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이기도 하고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니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도 있다.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곧 배움과 삶의 욕망이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어느 대학에서 3월 초순부터 6월 중순까지 한 학기동안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의 직장일도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고사固辭를 했다. 하지만 조선과 석유시추선에 관한 실무경력이 풍부한 엔지니어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대학 측의 얘기를 듣고 간곡한 부탁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의 시간을 위해 수요일 오후에 3시간으로 모아 주겠다는 배려까지 해 주니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첫 강의를 위해 학과사무실에 들렀을 때 나의 이름 뒤에 교수님이라는 글을 보고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교수가 아니고 미국해운회사의 선주감독’ 으로 불러 달라고 하니 조교가 말하기를 ‘대학에서는 강단에 서면 모두 교수’라 부른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출석을 부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단에 얼떨결에 섰을 때 학생들도 모두 나를 교수님이라 불렀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가르치는 표현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내가 맡은 과목은 지난 20여 년 동안 산업현장에서 해 왔던 일이라 막힘은 없었다. 이렇게 가르치면서도 나는 석사과정을 밟느라 대학원 3학기째를 다니고 있는 40대 중반의 만학도였다. 한편으로는 가르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배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가르치는 것 또한 쉽게 되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만학도 에게도 교수님이 휴강을 한다하면 왠지 즐거워진다.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짐을 의미한다. 배운다는 경직된 상황을 벗어날 수 있고 편안하게 풀어진다는 것은 넉넉함을 주는 여유로움이다. 학부 시절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지금 느끼는 것은 배움에서만 오는 특별함이다.
한 학기가 지나갔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출석점수를 챙겨 학점을 매겨야 한다. 수업에는 빠짐없이 출석을 성실하게 했지만 시험점수는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결석이 몇 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잘 치른 학생이 있기도 하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보노라면 안타깝다. 부모님들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할까 하는 마음에 느낌이 알싸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마음을 알기에는 학생들의 연륜이 많이 흘러야겠지만 내 자신이 부모 된 입장에서 볼 때는 안타까울 뿐이다.
2학기에도 대학에서 9학점 정도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나의 업무도 있고 해서 어떻게 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2학기에 또한 나 자신도 계속해서 배움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바쁜 일정이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지나고 보니 대학생들을 5년간 가르쳤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들이 모르는 지식을 깨우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꼈고 배우는 일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나의 지적인 재산도 함께 늘어간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한번 더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