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새벽’이라는 법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나라를 위한 인재 양성 시스템으로 길러낸 화랑도 출신인 그는 신라가 낳고 동아시아가 기른 최고의 철학자이자 종교가인 원효다. ‘새벽 대사’ 원효는 태어날 때부터 결핍을 안고 태어났다. 원효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 어머니와 열두 살 때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보며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안고 청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예수도 아버지 없이 동정녀가 마리아가 낳았고 무함마드도 유복자였으며 석가모니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그렇듯 죽음과 삶의 문제는 인류가 풀지 못한 근원적 문제였기에 원효가 사상가가 되고 종교가가 된 것은 우연은 아닌 듯하다.
21세기 개명한 세상이 된 지금도 삶과 죽음은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다. 태어나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권력으로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도 물력으로 온갖 부를 누리는 사람도 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18세에 자신이 살던 집을 ‘초계사’라고 부르며 이름도 첫새벽이라 뜻의 ‘원효’라는 법명을 스스로 지어 불렀다. 원효는 왜 출가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교가 신라를 존재하게 한 국교이었기에 가능하다는 설은 자명하지만, 그보다 인간 원효의 앎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당나라 천재 스님 ‘현장’의 문하생이 되고자 유학 가는 길, 국경 지역에서 고구려 국경수비대에 간첩으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어느 동굴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자다가 목이 말라 잠결에 물을 마시니 너무 달콤하고 시원했다. 아침에 깨어 보니 자신이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구역질이 나 모두 토해내고 만다. 잠결에 마신 물은 그렇게 시원했는데 아침에 본 물은 더럽다니 순간 깨달음이 온다. 원래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는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걸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되돌아온다. 이 위대한 깨달음은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깨달음이 아이콘이 되었다.
지혜에 대한 목마름,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마침 불교와 맞닿아 있었기에 대승불교가 꽃피던 신라는 원효의 향학열에 불을 지피기에 최적이었을 것이다. 나만 잘살고 깨닫는 건 반칙이라는 걸 이미 알았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이 되기 위해 원효는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시장통을 떠돌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모든 권위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천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그들을 교화했을 것이다. 요석궁의 과부인 요석공주를 유혹하여 아들 설총을 낳으면서까지 삶이란 정해진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민중주의, 보살주의, 자유주의를 실천한 원효를 다 이해할 수 없음을 나는 고백한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기독교도 원죄를 주장하고 불교도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원죄를 주장하는데 왜 원죄를 인간의 근원으로 결정지었을까. 생각을 바꾸어 원죄가 아니라 원복이라고 하면 삶이 조금 더 즐겁지 않았을까. 이 지독한 종교의 관념주의에 우리는 여전히 매몰되어 있다. 원효가 만든 정토사상은 무지몽매한 사람도 ‘나무아미타불’만 염불하면 정토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조건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논리와 다름이 없다. 무조건 믿어라. 무조건 따르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닥치고 나만 따라오라는 이 지독한 ‘리더주의’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승의 배에 태우고 저 바다를 넘어 피안으로 가고자 했던 종교 리더들의 리더십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원효가 고선사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벗 사복이 불쑥 찾아왔다. 대뜸 “예전에 그대와 내가 경전을 실어 나르던 암소가 죽었으니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사북과 원효는 어머니의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산으로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팠다. 그때 사북이 불쑥 말한다. “자넨 파계했지만 그래도 중이었으니 우리 어머니 극락왕생하게 법문 좀 해 주게” 원효는 바로 친구 어머니의 죽음을 축원하는 법문을 했다.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괴로우니
죽지 말지어다 나는 것이 괴로우니
그러자 사복이 “무슨 법문이 그렇게 어렵고 번거로운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해 봐”라며 핀잔을 주자 원효는 바로 고쳐서 “죽고 태어남이 괴롭다(死生苦)”라고 하니까 비로소 사복은 활짝 웃으며 만족해했다. ‘고통’이 불교 사상의 출발점인 것처럼 원효는 생사가 고통이라고 말한다. 고통이라는 자각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 한계성에 도전하라는 법문이지만 이왕이면 “태어났으니 잘살자. 그러면 죽는 것도 축복일 테니, 죽을 때가 되면 죽자. 태어나는 것도 축복일 테니”라고 했으면 원효의 사상과 종교관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세상이 달라졌을까. 나는 이 위대한 원효의 법문에 돌 하나 던져보는 만용을 부려본다.
원효는 불교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뛰어난 저술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100종의 200여 권의 책을 썼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 21종의 26권 정도다. 가장 중요한 책들은 일본이 가져가 원효를 활발하게 연구한 것도 아이러니하게 일본이다. 일본사람들이 원효의 글을 베끼고 해석한 시기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루어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많은 책을 가져갔다. 지금 우리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원본을 빌려와 연구하고 있다. 원효의 사상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있는 사람은 오룡산 오룡골에서 정진하고 있는 정목스님이다. 정목스님은 원효의 화신이 되어 원효를 현대에 불러와 원효 사상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원효는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一切唯心造)”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