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몸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
- 양주 楊朱 (BC 440?-BC 360?,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인천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을 든 중년 여인이 아들뻘 되는 젊은이에게 짐 좀 올려 달라고 하자 “제가 왜요?” 하더란다. 그 여인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힘 좋은 젊은 남자가 힘 좀 쓰는 게 뭐가 어렵단 말인가? 아마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참….’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른 도시에 갔다가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내 말을 아예 듣지 못한 척하는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다. 기분이 무척 상했다.
하지만, 내가 젊은이라 해도 그들과 같은 심정일 것 같다.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는 선진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기가 힘들다니!’ 이 불만이 기성세대에게 향해지지 않겠는가? 그들은 이러한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에게 말없이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기성세대의 심정도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들은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젊은이들은 얼마나 안락하게 자라났는가?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라나는 환경에 의해 인성(人性)이 형성된다는 것을. 21세기에 자라난 세대들을 보릿고개를 겪으며 자라난 세대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들의 눈으로 기성세대를 보면, 완전히 개성이 말살된 집단주의, 전체주의일 것이다.
우리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보이는 젊은 세대들에게서 ‘개성(個性)’을 보아야 한다. 개성은 기성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인류사에서 개인이 등장한 것은 산업사회 이후다.
인류는 오랫동안 한 개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러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가문을 벗어난 개인이 탄생했다. 개인(個人),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가!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는 단독자!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각자 하나의 세계다. 인간마다 그 차이가 종(種)의 차이만큼 크다. 다양한 재능과 성격을 타고난 각 개인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꽃피워가는 세상,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이러한 개인들은 서로 연대하게 되어있다.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르고 뒤에 오는 사람은 손을 잡고 끌어준다. 이렇게 각자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향해 가는 도정에서, 양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된 것이다.
“나의 몸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되고, 다시 넘어서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개인이 되고 진정한 이타주의가 될 수 있다. 자신밖에 모르는 정신은 언젠가는 깊은 내면의 본성(本性)을 깨우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다.
밤이 깊어져야 새벽이 온다. 우리는 지금 깊은 밤 속에 있다. 다들 깊은 외로움의 병에 걸려있다. 이제 곧 저세상으로 갈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새벽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길을 밝혀주어야 한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을 길목에서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
- 최승자, <외로움의 폭력> 부분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외로운 사람은 무서운 폭발물이 된다. 그의 안에 응축된 에너지는 밖으로 분출하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발한다. ‘아무도/오지 않을 길목에서’ 그의 총구는 끝끝내 자신의 뇌리를 겨누게 된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 함께 손을 잡아야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