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곳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얼마 전 대학생 때 보았던 사관과 신사라는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두 사관생도의 서로 다른 형식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한 명은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늘 부모가 정해 주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또 다른 의미에서 선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명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사랑이 중요한 줄 모르고, 다른 한 명은 사랑을 너무 받지 못해 사랑이 남겨 놓을 상처를 경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한 명은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사랑을 선택하지만, 여자는 장교의 아내를 꿈꾼다며 청혼을 뿌리칩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그 한 명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다른 한 명은 훈련소의 생활이 마감으로 치달을수록 사랑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이 주일 동안 전화도 안 받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버려질 것을 예상하며 미리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미련을 가지면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리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곤두세우고서 자기를 보호했던 것입니다.


전화 연락을 받지 않는 남자 친구 때문에 상처를 받은 여자는 남자를 찾아 가려 하지만 그 여자의 어머니가 말립니다. 그러지 말라고 흥분한 딸을 달래 줍니다. 정말 눈물겨운 장면입니다. 그 어머니도 사관생도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 딸을 낳았지만, 결혼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참지 못하고 딸이 남자 친구에게 다가서면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사코 말렸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여자 친구가 일하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 힘차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자아냅니다. 소음을 막기 위해 귀마개를 하고 있던 여자를 남자는 뒤에서 사랑스럽게 안아 줍니다. 그때 공장의 기계 소음까지도 압도하는 음악의 선율이 너무도 감동적입니다.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훈련소는 두 사관생도에게 마지막 결전의 장소였습니다.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한 명은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훈련소를 택한 것입니다. 둘 다, 운명과 마주한 상황이었습니다. 둘 다,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습니다. 한계 지점이 훈련소로 연출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은 실패로 끝나고, 다른 한 명은 성공으로 이야기를 마감합니다.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그 다른 한 명의 것이었습니다. 


떠나는 사람 떠나게 하는 여자 친구의 참고 견디는 힘든 과정이 남자 친구를 다시 쟁취하는 기회를 얻게 해 주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여자에게로 향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때 흘러나온 음악은 가끔 동해로 가는 길목에서 드라이브를 하며 듣기도 합니다.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극복하려면 한계에 직면해야 합니다. 행복하려면 불행을 이겨 내야 합니다. 이후에 벌어질 일을 미리 염려하여 회피하면 극복은 꿈도 못 꿉니다. 늘 하던 만큼만 하면 스스로 익숙한 현상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우상의 황혼에 남겨 놓은 니체의 잠언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해 줍니다. 


영국의 르네상스 작가 셰익스피어의 말로 하자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삶은 용기를 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르네상스의 이념입니다.

작성 2023.04.24 10:26 수정 2023.04.24 10:26

RSS피드 기사제공처 : 출판교육문화 뉴스 / 등록기자: ipec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