聞誅一夫紂矣(문주일부주의)
군자중용 소인반중용
그가 저를 찾아 온 건 겨울이 막 끝나고 봄이 오려는 시기였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침울해 보이던지, 그의 우울감은 깊어 보였습니다. 사십대의 그는 회사에서 부장이라고 했습니다.
“직장생활 17년 동안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어요. 주재원으로 생활하는 동안도 고가 점수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승진도 남다르게 빨랐고, 저는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중이라는 걸 의심치 않았어요. 휴일도 반납하고 일에만 집중해서 그렇게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거고 회사에서도 그걸 알아 주셔서 본부장 승진이 거의 확정이었는데……”
뒷말을 잊지 못하고 그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승진시험도 잘 치룬 거 같았는데, 저보다 학벌도 안 좋고 성과도 없는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 때도 설마 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일을 했는데……. 승진 인사공지를 보고 여태껏 제가 뭘 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선생님, 제가 무얼 잘 못 한 걸까요?”
“네, 승진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계셨다면 실망이 크셨겠어요. 혹시 상사분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셨나요?”
“네. 상무님께 여쭤 봤는데 애매하게 말씀 하시면서 성과가 있으니 다음에는 꼭 될 거라고, 직원들과 좀 쉬어가며 일하라는 말씀만 하시더라구요.”
그와의 첫 대면 상담에서 제가 주목한 건 그가 쓰는 단어가 온통 성과를 나타내는 수치나 그동안 자신이 이룬 성취에 국한된다는 거였습니다. 학업을 우수하게 마쳐 우리사회에서 이르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종 목표가 회사의 임원이었던 그는 자신이 목표한대로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성취지향으로 달려 왔습니다. 그랬던 그였기에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바로 목전에 있었던 거였지요.
그는 상담을 통해 지난 회사 생활을 돌아보며 회기를 거듭할수록 스스로를 반추하게 됐습니다. 상담 중간 쯤, 그는 자신이 본부장 승진 심사에서 왜 탈락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내침을 당할 때는 팀장이 아닌 그저 구성원에 불과/ 문주일부주의 (聞誅一夫紂矣)
그가 승진 대상에서 가장 유력한 본부장 후보였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내에 그가 본부장으로 승진할 거라는 소문이 돌면서 인사부에 여러 통의 투서가 들어 온 겁니다. 그는 후에 여러 경로를 통해 투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팀원을 혹사 시키고 모든 성과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안하무인이라는 게 투서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가 본부장으로 승진하면 퇴사를 고려하겠다는 투서도 있었던 거였습니다.
일찍이 맹자는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군주는 교체해야 한다는 ‘민본주의적 혁명론’을 주장합니다. 이는 맹자가 제왕 리더십을 코칭하며 천하를 주유할 때 만난 제선왕과의 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탕이 걸을 내쫓고 무는 주를 정벌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 라고 제선왕이 묻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제선왕의 질문에 맹자는 잠시 침묵하다 ‘고서에 그리 기록돼 있다’ 라고 대답합니다.
제선왕의 질문은 은나라를 세운 탕은 하나라의 포악한 군주 걸을 내쳤고, 무는 주나라를 세운 왕인데, 부패한 은나라의 주왕을 정벌한 역사적 사실을 맹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맹자의 대답에
’신하가 군주를 어찌 죽일 수 있단 말이냐’ 라고 재차 제선왕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고 하며 잔적한 자를 일개 사내라 하니, 일개 사내에 불과한 주를 베었다는 말을 들었어도 신하가 군주를 죽였다는 말은 제가 일찍이 듣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제선왕의 이 질문은 왕의 자리에 있는 자신의 감정이 이입돼 신하가 왕을 죽이는 게 군신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느냐라는 민감한 속내를 감춘 질문이었고, 어느정도 답정너를 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좌중은 맹자의 대답이 과연 어떠할지를 숨죽여 듣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맹자의 대답은 지금 들어도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군주답지 못한 군주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닌 필부에 불과하기에 신하와 백성에 의한 역성혁명은 당연하다는 거지요. 자신의 공과와 상관없이 왕, 즉 리더의 권력이 있으니 무소불위無所不爲. 아무도 해할 수 없다는 눈에서 훨씬 더 멀리 전망한 맹자의 대답으로 제선왕은 역할의 막중함을 깨우쳤을까요.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모든 리더에게 적용되는 지위, 즉 직급의 역할을 일깨우는 날카로운 깨우침입니다. 직장의 리더가 덕을 쌓지 못하면 그 역할을 벗어난 한 사람의 개인에 불과하니 내침을 당해도 타당하다라는 뜻인 거지요. 몇 천 년 전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여전히 리더의 덕목에 적용되니 변함이 없으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성과를 냈을 뿐인데, 어이가 없네요. 상급자는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회사에서 중요한 게 또 뭐가 있나요. 아, 진짜 염증이 납니다. 그런 저를 독려했던 윗분들도 이제는 저를 외면하고 제가 유능해 좋다던 직원들은 제게 칼을 꽂고 어이가 없습니다. 출근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당장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사표를 써야 하는 걸까요?”
“이제껏 열심히 하셨는데 그런 마음이 드실 수 있으실 듯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처음부터 부하직원이나 팀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차차로 돌아보게 되는 거지요. 특히 임원급에서는 목표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저도 한때 그랬구요.”
“그렇다면 제가 잘 못 한 게 있는 거라는 말씀 이신 거지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 드리긴 어렵고 이제 같이 찬찬히 되짚어 볼까요”
그는 상담 중 지난날 성과 위주로 달려오던 지난날을 역할극을 통해 일터의 일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늘 무대에 세우고 싶어 하고 직원들 야근을 빈번히 시키는 건 물론, 좋은 의견을 내는 부하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던 자신의 맨얼굴을 바로 보게 됐습니다.
상담이 중반쯤 이르렀을 때 어느날, 그는 말했습니다.
“직원들이 처음부터 저를 피했던 게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성과를 인정하는 것도 너무 인색하고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네요. 저는 상사가 아니라 질주하는 기차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이 붉게 충혈 돼 있었습니다. 그가 그 대목까지 오도록 내내 기다리며 상담을 했던 저는 그 말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또 그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마법의 대화 포스텝』을 배우며 대화, 즉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소통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직장의 현장에서 『마법의 대화 포스텝』 강연을 통해 개인의 소통 진단을 해 보면 많은 상사들이 소통을 잘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의 리더들 대부분이 최선을 다해 구성원을 배려해 말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과 할까?
이제 그는 이제껏 성취 위주로 달려온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반추해 봤으니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맹자의 스승이었던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자가 으뜸이요( 生知),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 (學知),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배우는 자는(困知) ,또 다음, 벽에 (곤경) 부딪쳐서도 배우지 않으려는 자는 가장 못난, 하위 사람이다(下愚)."
"생이지지자상야, 학이지지자차야, 곤이학지우기차야. 곤이불학민사위하의."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又其次也. 困而不學民斯爲下矣.
라고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는 성과만을 저울에 달던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기 전 숨을 고르며 생각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고 일을 마친 후에는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공자보다 무려 40여년이나 어렸던 제자, 증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점에 대해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저 또한 아직도 일 년에 두어 번은 말 실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머리카락까지도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물과 다른 것은 돌아볼 수 있는 즉 반영, 반성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지요. 증자처럼 하루에 세 번 진심을 다하지 못한 거, 신의를 지키지 못한 거.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알고만 있어도 우리는 더 평화로워질 수 있습니다.
북극성의 리더십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을 만났던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덕(德)으로써 정치를 행함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도 믓별들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정치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기업의 조직, 가정, 어느 조직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내 필요에 따라 오라 가라 하는 게 아닌 시종, 덕으로 구성원을 대하면 북극성처럼 사뭇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구심점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팀워크가 형성되는 건 자명합니다.
이처럼 덕을 쌓는다는 말에는 항구적인, 시종일관의 태도가 함의 되어 있는 것이지요.
타인을 향한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타자의 태도/ 구이경지(久而敬之)
누구라도 편안히 말을 건넬 수 있는 인품을 지닌 리더가 되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은 마지막으로 구이경지(久而敬之)입니다. 이 말은 논어 공야장에 수록된 말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제나라 재상 안영을 두고 ‘사람을 사귄 지 오래되어도 공경(恭敬)으로 대하는 구나’라고 칭찬으로 안영을 전한데서 유래했습니다.
승진에서 탈락한 부장이 17년간 조직의 성과를 내면서도 그 시간을 가꾼 오랜 공경의 우의가 있었다면 본부장 승진이 가능했겠지요.
이제 그는 구이경지(久而敬之), 타인을 향한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타자의 태도가 된다는 걸 다시금,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상처 받은 팀원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 지를 잘 알게 된 거지요.
이제 군락을 이룬 철쭉처럼 관계의 정원이 만개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시간.
독자 여러분들도 덕으로 관계를 맺기보다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직장 날씨에 따라 관계를 밀고 당기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