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사회에서 권력이 있는 곳은 사회다. 추장에게는 의무만 있을 뿐 권력이 없다.
- 피에르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 (1934~1977, 프랑스의 인류학자)
고향에 물고기를 아주 잘 잡는 후배가 있었다. 그는 웅덩이나, 개울, 강물에 손을 넣기만 하면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손을 물속에 넣고 가만히 있으면 물고기가 와요. 그러면 잡기만 하면 돼요.”
나도 따라 해보았다.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미끄러운 물고기들을 어떻게 움켜잡는 건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이러한 탁월한 재능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타고난 재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세상이 알아주는 재능은 따로 있다. 공부 하나만 잘해도 이 세상 살기에 얼마나 편한가? 인간은 수만 년 전의 원시부족사회에서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으로 잘 살아갈 수 있었다.
수백, 수천 명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다 농업혁명이 일어나며, 사랑 가득한 원시부족공동체사회는 무너지게 되었다.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며 일하지 않는 귀족들이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하면서도 더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류의 대사기극’이라고 했다. 그 후 철기가 등장하면서 대제국들이 등장했다. 중국 드라마 ‘조광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조광윤은 중국 송나라를 세운 위대한 황제다.
그는 당나라가 무너진 후 여러 작은 왕국으로 갈라져 일상이 비상이 된 세상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천하통일을 꿈꾼다. 그는 거대제국의 운영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수천만 명의 백성들을 잘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그의 신하 중에 상당수가 권모술수로 권력을 잡고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들을 천자 혼자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의 저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인디언 사회에서 권력이 있는 곳은 사회다. 추장에게는 의무만 있을 뿐 권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아닌 어머니 같은 추장이 이끌어가는 부족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추장은 재판관이라기보다는 타협점을 찾는 중재자이다. (...) 어떤 인디언 부족에서는 추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다른 누구보다도 소유물이 적고 가장 초라한 장식물만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꿈꾸어야 할 세상은 원시부족사회의 정신일 것이다. 권력이 아닌 사랑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그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고귀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사회의 단위가 커지게 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지닌 지도자들도 거대한 제국을 잘 다스릴 수는 없다. 인류가 하나의 촌이 된 이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요즈음 지역사회 곳곳에 여러 작은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시원이 될 것이다. 물고기 잡는 능력 하나로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후배를 보고 싶다. 그의 천진한 웃음을 보고 싶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부분
우리 가슴에는 차마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이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이런 시골 마을에서 보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이러한 인류의 고향이 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