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의 인문학적 글쓰기] '동숙의 노래' 그 사랑학적 고찰

곽흥렬

대중가요 가운데는 숨은 사연이 깃든 노래들이 의외로 많다. 그중 애틋한 사랑과 실연의 아픔이 담겨 있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 한산도 선생이 작사하고 백영호 선생이 작곡한 불후의 트로트 가요 <동숙의 노래>도 그런 부류의 하나이다. 그 슬프고도 애달픈 이야기는 대강 이러한 비화를 간직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동숙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동생들 학비와 가사에 보탬이 되라며 월급은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남기고 시골 부모에게 모두 내려보낸다. 

 

그러기를 십여 년, 이제 시골집 생활이 많이 나아졌다 싶었을 때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 동숙은 이미 서른에 가까운 노처녀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지나간 세월이 아쉬웠다. 이제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검정고시 준비를 한다. 대학에 들어가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중앙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한 끝에 중학교 졸업 자격을 얻는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가 생긴다. 자신을 가르치는 총각 선생을 향한 사모의 감정이 싹튼 것이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선생의 자취방까지 찾아가 밥도 해주고 옷도 빨아 주며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낀다. 거기다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 그리고 돈까지도 그에게 모두 바친다. 

 

그렇게 사랑을 키워가던 중 뜻하지 않게 가발공장이 전자산업에 밀려 감원을 하더니 결국 부도로 이어진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그녀는 등록비 때문에 학원도 나가지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부모의 도움을 얻으려고 시골집에 내려간다. 공부를 하도록 돈을 좀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부모는 한마디로 거절해 버린다. 

 

“야야, 공부는 무신 공부냐. 여 있다가 고마 시집이나 가거라.”

 

동숙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를 원망하며 눈물을 머금고 서울로 돌아온다. 십 년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그녀에겐 부모가 너무도 야속했다. ‘어떻게 만난 사랑인데’ 하며 그녀는 그를 놓칠 수가 없었다. 친구한테 어렵게 돈을 빌려 학원에 다시 등록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니 여태 몰랐나? 박 선생은 약혼자도 있고 이번에 결혼한다 카더라. 순전히 니를 등쳐먹은 기라, 가시나야.”

 

친구가 전해준 소식에 동숙은 까무러칠 지경이 된다.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한바탕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를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너와 난 그냥 학생과 제자 사이야. 내가 어떻게 너를……. 그리고 네가 좋아서 날 따라다녔지.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구.”

“그래예, 그라마 알았심더”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이미 철저히 농락당한 여자임을 깨닫게 된 동숙은 복수의 칼을 품는다. 동생들과 부모에게 늘 희생만 하고 그렇게 살아온 그녀는 “어차피 내 인생은 이런 거야” 하며 비탄에 잠긴다. 그리고는 동대문시장에서 흉기를 구해 가슴에 품었으니……. 

 

다음 날 수업 시간, 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막 끝내고 돌아서려는 찰나 “이 나쁜 놈!” 원한에 찬 동숙은 그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꽂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박 선생의 비명 소리에 교무실에서 동료 선생들이 달려오고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간다. 경찰에 붙들려 와 조사를 받으면서 동숙의 뺨에는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이 흐른다.

 

“어찌 됐어요. 형사님! 모든 게 제 잘못이에요. 제발 선생님을 살려 주세요.”

 

라고 애원한다. 자신을 탓하면서 선생님 안부를 더 걱정하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죄로 영어의 신세가 된다. 가난 때문에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 뒤늦게 얻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고 만 기막힌 이 이야기가 한 여성 주간지 생활 수기 공모에 당선되어 활자화되었고, 그때 당시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동숙의 노래>에 그처럼 슬픈 사연이 숨어 있은 줄은 미처 몰랐었다. ‘동숙’이라는 여인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았다. 그러면서 내 무지가 잠깐 부끄러웠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던가.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녀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겠다 싶은 동정심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더 사려가 깊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다. 

 

언제나 감정이 앞서면 일을 그르치고 만다. 그 안타까운 사연 또한 끓어오르는 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눈멀게 하여 초래된 비극적인 결말이 아닐까. 불타는 복수의 에너지를 슬기롭게 승화시켰더라면 결과는 백팔십도로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백합꽃처럼 아름다운 한 편의 순애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우리는 차원 높은 사랑의 본보기를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찾기도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 한 줄의 시구에서 목련꽃 같은 순백의 사랑을 본다.

 

진정한 사랑은 집착執着으로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무착無着으로 놓아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집착은 복수심을 부른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참된 사랑은 희생과 헌신이다.” 지난날 학부 시절의 한 은사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셨다. 은사님 말씀의 참뜻이 그때는 별반 와 닫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진정한 의미가 깊이깊이 되새겨진다. 

 

자기희생으로써 사랑하는 대상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이것이 더욱 큰 사랑을 만드는 힘이 아닐까. <동숙의 노래>는 내게 그 화두를 던져준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4.28 10:36 수정 2023.04.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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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