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소년에서 멈춘 비운의 왕 ‘투탕카멘’

전명희

나는 삼천삼백여 년 전 인간 ‘투탕카멘’이다. 아름다운 지중해로 흐르는 나일강 유역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의 전통 종교인 바람과 공기의 신 ‘아멘’을 거부하고 태양신 ‘아톤’을 숭배한 종교개혁가 아케나텐왕이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멘신의 신전들을 폐쇄하고 사제들을 탄압해 재산을 몰수했다. 백성들의 가정에서도 아멘신 숭배를 일절 금지하고 아톤신을 섬기도록 했다. 또한 아마르나 지방에 신도시 아키타텐을 건설하고 궁궐을 지어 수도를 옮겼지만, 기득권을 가진자들은 수도 천도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종교를 개혁하고 수도를 옮기는 등 개혁 의지를 불태운 아버지 아케나텐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 신관들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아버지 아케나텐을 견제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궁궐에서 그저 귀엽고 행복한 왕자로 자라났다. 

 

아버지 아케나텐은 유난히 키가 크고 얼굴은 길쭉했다. 거기다가 둔부가 크고 유방까지 튀어나왔다. 남다른 외모의 아버지는 남성의 특징과 여성의 특징을 고루 갖춘 성 소수자였지만 오히려 남성성과 여성성을 겸비한 신의 외모를 갖추었다고 국민에게 추앙받았다. 그런 나의 아버지 아케나탄이 왕위에 오른 지 17년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큰 슬픔에 잠길 수도 없는 나이었다. 슬픔이 무엇인지 모를 천진난만한 나이 9살이었다. 세상을 다 잃은 9살의 나는 관료들이 쥔 막강한 권력의 칼에 맞춰 춤을 추는 어린아이였다. 

 

아버지 아케나탄이 돌아가시자마자 나는 왕에 즉위했다. 내 이름은 원래 아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투탕카텐이었다. 존경하는 아버지 아케나탄이 지워주신 이름이다. 그러나 아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투탕카멘으로 바꾸어야 했다. 권력을 쥔 관료들은 강제로 내 이름까지 바꾸면서 아버지 아케나탄를 모욕했다. 고위 관료들은 아버지 아케나탄이 개혁한 종교 아톤을 버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아멘으로 개종하는 등 아케니탄의 흔적 지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나를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했다. 9살 어린애가 무얼 알겠는가. 왕이지만 왕노릇을 할 수 없는 나의 왕국 이집트는 그렇게 관료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 모든 사건들은 관료들의 우두머리인 대재상 아이와의 짓이라는 걸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왕궁의 실권을 쥔 그는 모든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나는 실패한 개혁가 아케나탄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몸이 쇠약하고 건강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의 나는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할 정도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다리뼈가 괴사하고 왼발이 기형인데 이런 선천적인 결함을 가진 연유를 추측해보면 우리 왕국은 형제나 친척 간의 근친혼을 당연히 여긴 결과이다. 순혈을 유지하려는 우리 왕국의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나 같은 결과물을 낳게 된 것이다.

 

나는 병약했지만, 왕국을 지키고 다스리기 위해 개혁적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갔다. 우선 아마르나 시대에 훼손된 오래된 건물들을 복원하고 나의 아버지 아케나탄의 유해를 왕들의 계곡에 다시 묻었다. 그리고 수도를 아키타텐에서 테베로 옮겼다. 그리고 이복 여동생 안케세나문과 결혼했다. 왕가의 결혼이란 정략이 개입되기 마련이지만 나는 왕으로서의 통치를 위해 모든 걸 감내하고 특히 내 병약하고 나약한 육체적 결함을 관료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이 피눈물 나는 왕노릇은 때론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지만, 운명의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무도 몰랐다. 

 

나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안케세나문이 임신을 했다. 나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뭔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왔지만, 단단히 숨기고 안케세나문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안케세나문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고 왕가의 사람들은 축복의 노래를 불렸다. 그러나 아이를 밴 지 6개월 무렵에 그만 아이는 안케세나문의 뱃속에서 죽고 말았다. 불안의 끝은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국정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 어린 왕이라는 모멸감으로부터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나는 이집트의 존재감 없는 왕일 뿐이었다. 

 

매 순간이 긴장되고 힘든 시간이었다. 내 신체적 결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를 보는 관료들의 시선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사냥을 나갔다. 호랑이 가죽옷과 누빈 주름치마에 은색 무릎 덮개를 갖춰 입고 용감하고 위풍당당한 사냥꾼들을 데리고 왕실 사냥을 나셨다. 궁궐 앞에 새로 만든 황금마차가 도착했다. 나는 안케세나문과 같이 황금마차에 올라 마차를 몰았다. 사냥은 나를 잊게 해준다. 나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허수아비 왕이라는 모멸감도 잊게 해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정한 정치판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건 사냥뿐이다. 

 

산해진미로 배를 채운들 무엇하겠는가. 멋들어진 옷을 입고 산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훌륭한 예술품도 나를 위로해 주진 못한다. 그러나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놀이는 사냥이다. 나는 미타니왕국의 투라나왕이 나의 할아버지 아멘호텝 3세에게 선물로 준 황금칼집으로 장식된 단검을 허리에 차고 신나게 마차를 몰았다. 아, 이 순간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다. 나는 이 순간 비겁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모멸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직 사냥에 몰두해 모든 것을 잊으면 된다. 나는 오랜만에 땀에 옷이 젖을 정도로 사냥에 몰두했다. 몸은 찢어질 듯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고 개운했다. 

 

해가 두어 번 바뀌고 나의 아내 안케세나문이 다시 임신했다. 백성들은 왕가의 번성을 위해 아낌없는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불행의 문을 닫고 행복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면서 아이가 뱃속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축복받은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이토록 잔인한 운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에게 있어 죽음은 삶보다 가까이 있는 것 같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과의 결혼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은 될망정 인간으로서 살아갈 존엄을 지키기에는 터무니없는 제도일지 모른다. 

 

나는 아픈 몸으로 이집트를 이끌었지만, 한계에 이르고 말았다. 관료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나를 위협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내 왕위를 이어줄 자식도 없는 처지라 차라리 어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 편히 안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세상의 슬픔을 몸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겨우 18열 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내 몸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05.01 11:40 수정 2023.05.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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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