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발과 물고기뛸 발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한자에서 발 자가 지닌 의미가 참 특이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발 자를 크게 적어 놓고선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용아! 필 발과 물고기뛸 발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설명해 보라!” 


아버지의 질문은 고사하고, ‘필 발’과 ‘물고기뛸 발’이 의미하는 것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의 형식을 채우고 있는 내용, 즉 그 낱개의 개념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아들이 침묵을 이어가자 아버지는 깊은 시름에 빠진 듯 벽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한없이 긴 침묵이 놓여 있었습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자기 자신만의 질문 속에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즈음은 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았던 침묵이 가끔 꿈에서도 나타납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때 아버지의 나이에 도달했습니다. ‘필 발’이 ‘꽃이 핀다’는 뜻임을 알고 나서, 몇 년 전에 아버지의 질문을 품고서 동화를 한 편 쓰기도 했습니다. 제목은 새끼 물고기라고 했습니다. 이 동화는 여러 선생들이 함께 집필에 동참해서 쓴 쓸모없어도 괜찮아라는 책 속에 담겼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게 풀어 나갔습니다.


새끼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엄마, 바다가 뭐예요?” 


어머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지만, 바다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끼 물고기를 데리고 여러 선생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혹시 바다가 뭔지 아세요?” 


모두들 나름대로 설명은 해 주었지만 답답함은 풀리기보다 증폭되기만 거듭했습니다. 알고 싶은 욕망이 삶을 괴롭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늙은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다는 스스로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꼬리에 힘을 주고 저 물 밖으로 힘차게 솟아올라 보세요. 그러면 바다가 보일 거예요.”


인식은 시간을 전제합니다. 깨달음은 같은 질문을 품고 오랫동안 잉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산고의 고통도 감당해야 합니다. 


인식은 고통의 산물이고 고통의 언어입니다. 그런 언어들이 모이고 모여 존재의 집을 지어줄 것입니다. 


니체도 하이데거도 모두 한 목소리로 이 존재의 집을 지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집에 살 수만 있다면 편하게 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에 가면 불화, 즉 성화로 연꽃을 그려 놓은 것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가끔 동해로 가려다가 길이 막힐 때면 ‘두물머리’란 곳으로 가기도 합니다. 거기에 가면 수많은 연꽃들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연꽃을 대할 때마다 수많은 인연들이 기억 속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아버지는 늘 연꽃만 보면 똑같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알 수 없는 물의 깊이를 참고 견뎌 마침내 수면에 도달하게 되면 꽃으로 피어난다.”


연꽃이 피어나는 것도,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것도, 모두 한결같이 ‘물 밖으로’라는 이미지를 전제합니다. 


밖으로! 그것이 이념입니다. 그것이 이해되어야 발견發見도 또 발명發明도 가능해집니다. ‘발견의 시대’로 유명했던 근대, 그 시대를 이끈 ‘르네상스’라는 개념 자체의 의미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다시’는 과거를 전제합니다. ‘반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부활도 ‘중생重生’ 이론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신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든, ‘필 발’과 ‘물고기뛸 발’의 의미를 통해 인식을 얻든 상관없습니다. 목적지는 ‘놀라운 발견’으로서 똑같습니다. 밖에 도달하면 빛이 보입니다. 


단테가 천국을 엠피로스, 즉 빛으로 설명한 것도 같은 말입니다. 모든 빛은 어둠을 전제합니다. 인식의 소리는 다 똑같습니다.



작성 2023.05.02 08:16 수정 2023.05.0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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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