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나이가 맛있다

하진형

아침 일찍 몸 정리를 하고 거울을 본다. 오늘은 20대 청춘들이 젊음을 불사르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두어 시간이나마 젊음들과 같이 지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요동쳐온다. 그런데 ‘이게 뭐지?’ 염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관자놀이와 구레나룻에 흰색이 삐져나와 형광등 불빛을 받고 있다. 감추려 해도 굳이 삐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니 막을 생각도 없다. 그렇게 자연스레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렇구나. 기억력도 떨어지고 허벅지 근육도 빠진다. 그뿐만이 아니고 무엇이든 한 번에 두 가지를 할 수가 없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나도 나이란 것을 먹고 있구나. 그런데 나이는 가만히 놀고 있어도 저절로 먹는다. 이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그야말로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이치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똑똑하고 지위 높은 양반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일도 수없이 많다. 

 

우선 나이 들면 고전(古典)을 편안하게 읽을 수도 있고, 한참 동안 바닷가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또, 젊은이처럼 굳이 핸드폰을 꼭 지니지 않아도 된다. 초보 농부로 초목(草木)과 친구로 지내면서 마음이 더욱 여유로워지기도 한다. 또 사람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가끔 늘어지기도 하는데 뒤따라오는 서두름이 없다. 지인(知人)과 지기(知己)와 지란지교(芝蘭之交)의 구분도 보이지만 함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어떤 철학자가 그렇게 말했다. 모든 생물은 나이를 들게 되면 육신(肉身)이 굳어지고, 더 딱딱하게 굳어지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고. 그러나 세상에 예외라는 것은 있는 법, 나이 들면 아집(我執)이 심해진다고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더욱 유연해 질수도 있다. 내 생각에 갇혀있지 않고 자연의 섭리(攝理)를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섭리는 내가 거부해도 그대로 순환한다. 

 

누구나가 기본적인 욕심이야 있겠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고집도 생기지 않고 젊은이들과 생각 나눔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니 친구들 또한 자주 찾아온다. 성인(聖人)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라’이르셨으니, 그런 고민 자체를 하지 않으면 걱정 자체가 없어진다. 이 얼마나 얻기 쉬운 행복인가.  

 

사진=하진형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평생 철들지 않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 이 또한 과욕인지도 모르겠다. 거창하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연스레 대하면서 굳이 늙어간다는 표현을 앞당겨서 또는 스스로 끌어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동심(童心)을 가슴 한 켠에 쟁여두는 여유도 곧 인생의 여백(餘白)이 아니겠는가? 한 줄기 가는 바람처럼 지나온 나의 삶이었지만 나름 봄볕처럼 찬란했다.

 

나이 듦을 생각한다. 나이 들면 청력(聽力)부터 간다는데 희한하게 비가 내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봄꽃이 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봄이 오면 씨앗들이 꼬물이 춤을 추면서 땅을 뚫고 올라오고, 뭇꽃이 이웃들과 손잡고 피어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 세상에서 나도 섞이어 따뜻함을 즐기는 것이다. 좀 엉뚱한 소리지만 우린 한때 모두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자(精子)였다. 그런데 지금은 나름의 삶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웬만하면 ‘화내지 않고, 말 줄이고, 아집 있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지 하는데 역시 쉽지는 않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앞에서 한 말을 잃어버리기도 하니 말을 줄이는 것이 낫고, 어떤 객관적 사실은 그대로인데 나이 들면서 나의 생각이 굳어져서 아집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내가 경계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나의 작은 영광은 누군가의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곱게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예쁘다는데.... 

 

우리 나이를 맛있게 먹자. 좀 많이 먹으면 어떤가, 어차피 걸어온 길 보다 걸어갈 길이 더 짧은 마당에 기쁨도 슬픔도 넉넉하게 나누고 넉넉하게 먹자. 하얀 벚꽃이 떠난 뒤에 피어난 싱싱한 파란 잎들을 보면서 가을에 내 곁에 다가올 노란 들국화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서툴지만 담장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틋이 피어있는 꽃으로라도 살다보면 어느 날 꽃 선물을 받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3.05.05 11:22 수정 2023.05.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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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