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경주 남산에서 신라의 혼(魂)을 만나다

여계봉 선임기자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천년고도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경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불국사와 석굴암만 찾는다. 서라벌의 남쪽에 솟았다 하여 ‘남산(南山)’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은 높이가 5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코 높지 않은 산이지만 100대 명산에 속하는 경주 남산은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종교적 측면에서 매우 크고 위대한 노천 박물관이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오늘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산 벗들과 함께 남산에 오른다.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삼릉탐방지원센터

 

삼릉탐방지원센터에서 남산을 오르는 길은 평탄한 듯 쭉 곧은 듯 구부러진 듯 완만한 진입로에 촉감 좋게 다져진 마사토길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숲길로 들어서니 비에 젖은 초록 나무들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상큼한 나무들의 향기를 맡으며 송림으로 들어서니 천년이 넘는 신라 역사 속 삼릉(三稜)의 주인들이 멀리서 온 손님들을 반긴다. 삼릉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주위의 노송들이 고개 숙여 능의 주인에게 예를 갖추고 있다.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과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솔숲의 모습을 보여줬던 삼릉숲은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숲이다. 삼릉을 지키듯 제멋대로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소나무들이 빼곡히 있는 삼릉숲의 신화적 분위기 속에서 피톤치드를 맡으며 걷는 것만으로 저절로 힐링이 된다. 

 

하늘 향해 곧게 뻗는가 하면 바람이 부는 데로 흔들렸는지 곡선을 그리며 위로 향하는 소나무, 밑동부터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 마디마디 상처가 나 아문 흔적이 있는 소나무, 서로 얽히고 기대며 긴 세월을 함께 했을 모습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평온한 길을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험난한 길을 걷는 이도, 서로 기대고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셀 수 없는 시간이 배어 있는 삼릉의 소나무숲

 

경주 남산의 유적들은 주로 석탑과 석불들인데, 그것들이 자연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데에 큰 매력이 있다. 그중에는, 온전한 모습을 지닌 것들이 드문드문 있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부서지고 무너지고 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온전히 남아 있는 것들은 그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를 매혹 시키는가 하면, 온전치 못한 폐탑과 폐불들은 그 처연함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남산 기슭의 밭둑에 박힌 폐탑재나 남산 바위 위에 조각되어 마모되어 가는 불상들은 고요히 천년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남산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불탑과 불상, 그리고 폐탑과 파불 등은 대부분 깊은 골짜기 같은 데에 고요히 숨어 있지만, 서남산 용장골의 용장사 터 같은 경우에는 삼층석탑과 마애불이 서쪽으로 트인 시원한 전망을 거느리고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기도 하다.

 

  삼릉계 선각육존불 

 

남산 곳곳에 조성되어있는 불상들은 대개가 노천에서 천년의 세월을 보낸 것들인데, 따라서 경주 남산은 단순히 걷는 산이 아니다. 산모퉁이를 돌면 불상을 만나고, 언덕을 타고 넘으면 석탑이 기다리고 있는, 그리하여 1천여 년 전 신라인(新羅人)이 되어보는, 마음 설레면서도 신비한 체험 길이다. 이 길을 걷는 내내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남산의 솔 향기가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

 

 산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불상들 

 

상사바위에 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가 보인다. 고승의 경지에 이른 소나무 뿌리의 인욕(忍辱) 때문에 바위가 금이 가 있는데, 실로 소나무가 보여주는 살아 있는 법문이다. 석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석불들을 보면 마치 오랫동안 집 떠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표정 같다. 경주 석굴암 대불이 당대의 영웅이나 권력자를 위한 석불이라면 남산 곳곳에 남아 있는 불상들은 민초들을 위한 석불로 느껴진다. 이들 형상 속에서 이 땅의 갑남을녀(甲男乙女), 다시 말해 우리들의 자화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진한 솔 향기에 둘러싸인 남산 중턱의 상선암

 

정상인 금오봉 주위는 옅은 운무에 덮여있고 얼마 전까지 진달래 꽃길이었던 산길은 연분홍 수달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금오산은 남산의 다른 이름이다. 금오산은 경주 시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금빛 자라 형상이어서 황금 ‘금(金)’에 자라 ‘오(鰲)’를 써서 금오산이라고도 불렀다. 금오산을 남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경주 남쪽에 있기 때문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곳이 바로 이곳 금오산 자락 용장사였다. 20대 초반 북한산 중흥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공부하던 서책을 모조리 불태운 뒤 스스로 속세를 등지게 된다. 그는 서른한 살에서 서른일곱 살까지 이곳 용장사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시편들을 남겼다.  

 

남산 금오봉을 함께 오른 산 벗님들(468m)

 

내려오는 산길 건너 바위에 계신 마애석가여래 부처님이 철부지 세상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온기를 머금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비에 젖은 몸에 저절로 온기가 감돈다. 빗속에서도 남산의 정물과 무정물은 말없이 큰 가르침을 들려주는 또 하나의 크나큰 스승이다. 

 

어쩌면 명산의 정기는 산의 높이나 크기보다 산을 대하며 지성을 쏟는 사람들의 애절함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작은 산세지만 천년의 역사가 담긴 비 내리는 남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비경들을 가슴에 담은 후 이제 발걸음을 토함산으로 향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5.09 11:03 수정 2023.05.09 18:41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여계봉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