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 혼란스러워지는데 나는 진짜 어젯밤의 심한 구토에 대해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나는 여기서 내 여행 중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제이드와 죠지가 고향으로부터 안 좋은 소식을 듣고 부르고스에서 5일간 머문 후, 다음날 따라잡기 위해 무려 41km를 초인적으로 걸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그들은 그 다음 날 두 번째 아침 식사 때 우리와 만났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그들을 안지는 겨우 2주 정도 되었지만 나는 그들과 아주 친해져 있었다.
한편 그들과 만나기 하루 전 일을 기억해야했다. 14일째 되던 날, 우리는 혼타나스에서 이테라 데 라 베가로 갔다. 19.5km 밖에 안 되었지만 나의 오른쪽 정강이가 별로 좋지 않아 더 걷지는 못했다.
아침에 손전등을 켜고 매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1) 발의 물집을 방지하기 위해 바셀린이나 콤페드 반창고로 발을 보호하는 일
2) 종아리, 무릎, 정강이에 소염제 볼타렌을 바르는 일
3) 오른 쪽 종아리에 보호대를 묶는 것
4) 탄력 있는 무릎 보호대를 차는 것
이 모든 것이 아침에 좋은 출발을 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남편 고든이 죽기 전에 암환자기금을 위한 순례를 할 때는 아주 잘 훈련되어 속도가 빨랐었다. 고든은 알람이 울리면 10분 안에 길 위에 섰다는 이야기를 고든으로부터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방에 조용히 있거나 아침 식사를 할지를 결정하느라 40분 또는 90분까지도 걸린다. 세삼 고든의 부지런함과 단호함에 놀라곤 했다.
나는 문득 떠올린 고든을 그리워하면서 밀크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밀크커피는 질이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쭈모 데 나란하 프레스카’ 라는 신선한 오렌지 주스는 가장 맛있는 것이기에 가게마다 질이 다른 밀크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수 있다. 어디서나 그걸 보면 마시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걷는 것은 기술자처럼 아주 정밀하게 되었다. 내 불쌍한 발과 다리의 여러 가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나는 체중을 분산하고 전진하는 실험을 했다.
예를 들면 내 체중이 제 위치의 발 위에 있지 않으면 무릎에 날카로운 통증이 온다. 그래서 양쪽 발에 균형을 잡고 살짝 앞으로 기대어 미는 것이 중요하다. 지팡이 위치도 중요하다. 그래야 팔도 무게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고, 그래서 전체 움직임은 마치 무언극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느끼는 통증은 많은 정신적 고뇌를 하게도 한다. 이 고통들은 내가 걸으면 같이 따라오면서 내 마음을 계속 점령한다. 하지만 동료 순례자들과 대화를 하며 서서히 걸으면 고통을 잊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내 육체 때문에 좌절했다. 내가 출발하기 전에는 이것이 육체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출발하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더 감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른이 된 후의 모든 생을 통하여 나는 산악 트레킹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것은 이 순례보다 더욱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아마 나이 문제이겠지만 정말 황당하다. 이것은 결국 단지 걷는 문제일 뿐이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가장 가벼운 짐을 졌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좋다. 내 좌절과 육체적 한계는 이걸로 됐다. 이제 다시 걷는 것이다.
우리가 끝없는 평원인 마세타스에 도착했을 때, 길은 벌써 며칠 동안 가없는 평야로 이어졌다. 앞으로 나흘간은 작은 언덕 하나도 못 볼 것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단조로운 경치로 소문난 곳으로 길게 똑바로 난 길을 6-7일 정도 걷는 수고를 해야 한다.
오늘은 약간 경사진 길이 나왔다. 그래서 순진하게도 즐거운 순간을 맞았다. 냇가를 보며 이야기 하던 하르트무트에게 나는 즐거운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바보처럼 웃어댔다.
이테라 데 라 베가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밝은 벽화가 붙어있고 근사한 선술집도 하나 있었다. 첨단 유행의 젊은 토박이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처럼 보였다. 자주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설치한 정자에는 난로를 하나 피워놓고 젊은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실내에는 동네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보며 북적대고 있었다.
첫날부터 함께 했던 한국에서 온 유쾌한 청년인 경원과 함께 점심을 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그냥 앞으로 내달려 가버렸다. 나의 조국에서 온 청년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고 서운했다.
숙소 그 자체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것이었다. 작은 방에 침대가 8개 있었다. 무지하게 춥고 주방과 샤워도 별로인데다 비위생적이었다. 그래도 하르트무트와 오시와 내가 있으니 이 상황이 호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에 하르트무트가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요리뿐 아니고 시장에도 갔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가야하므로 보통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멋진 침낭 속에 머물렀다. 오, 이 편안함! 저녁 식사도 너무 맛이 좋았다.
우리는 지역 상점에서 하르트무트에게 추천한 브르도스 레드와인을 한 잔하기로 했다. 별로 취하지 않아 설탕을 넣고 데웠다. 그는 좀 더 확실하게 하려고 리오하 와인을 구하러 달려 나갔다. 결국 우리는 프라이팬에 마실 수 없는 와인을 만들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근처 바에서 술을 한 잔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다. 텔레비전 축구 경기가 지역민들을 모두 불러냈나 보다. 숙소와 바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오시가 바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가 마실 것을 스스로 잔에 따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스페인식이긴 해도 이 방법이 건강을 위한 길일 것이다.
어떤 남자 하나가 오시를 ‘빨간 망토의 소녀’라고 부르면서 일자리를 하나 주겠다고 했다.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오시도 약간 마음이 흔들렸나 보다. 밤은 깊어갔고, 우리는 아침 6시 알람은 설정하지 않기로 했다. 제이드와 죠지는 이제 우리 바로 뒤 10km까지 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들이 우리를 따라잡을 것 같아 희망적이었다.
오시가 밤중에 짐을 싸서 떠나겠다고 하여 우리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시간을 물었더니 8시 반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보딜라 델 까미노에서 두 번째 아침 식사를 위해 멋진 숙소에 멈췄을 때, 드디어 제이드와 죠지를 만났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