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유행가 노래 제목과 영화 제목이 같은 것은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오기택의 <고향무정>, 패티김의 <남과 북>, 윤시내의 <열애> 등이 초기 영화음악 OST 곡을 선도했던 절창들이다. 이런 노래 중에 영화 제목이 노래 제목과 다른 곡조가 있었다. 1961년 한명숙이 부른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 노래는 간혹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표기된다. 이렇게 알고 있는 대중들도 많다. 영화 제목은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였다. 여기 ‘샤쓰’는 당시의 표기이고, 이 글 제목의 ‘셔쓰’는 오늘날로 표기를 한 것이다.
2020년 트롯 전국체전에서, 경연장의 노래 제목 방송 자막 표기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었다. 그 당시 글로벌 오마이갓김치팀(이시현·권민정·미카&갓스)이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열창하여,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부른 경상아가씨팀(공미란·오유진·김성범)과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노래다. 당시 오마이갓김치팀은, 이 노래를 8090 컨셉으로 스타일링 한 복고풍 무대를 펼쳤다. 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어쩐지 나는 좋아, 그이가 맘에 들어~.
노오란 샤쓰 입은 / 말 없는 그 사람이 / 어쩐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에 들어 / 미남은 아니지만 / 씩씩한 생김생김 / 그이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이 쏠려 / 아 야릇한 마음 / 처음 느껴본 심정 / 아 그이도 나를 / 좋아하고 계실까 / 노오란 샤쓰 입은 / 말 없는 그 사람이 / 어쩐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에 들어 // 아 야릇한 마음 / 처음 느껴본 심정 / 아 그이도 나를 / 좋아하고 계실까 / 노오란 샤쓰 입은 / 말 없는 그 사람이 / 어쩐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에 들어 / 어쩐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에 들어 / 어쩐지 나는 좋아 / 어쩐지 맘에 들어.
1961년 우리나라 길거리는 온통 노오란색으로 물들었었다. 노랫말 중의 이런‘오’자를 장식음이라고 한다. 멜로디 음표에 맞춘 숫자일 수도 있다. 거리에도 노란색 샤쓰를 입은 남정네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유행가가 의류 유행을 선도했던 것이다. 이 노래가 발표된 그 시절은 우리나라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하던 시기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손석우(1920~2019)는 이런 시류(時流)를 외면하고, 팝·스탠더드 팝 스타일 노래를 만들어서, 엔카(演歌)풍 트로트(뽕짝) 물결이 넘실거리던 우리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유행의 다리를 건설했다. 대중문화예술 감성의 포장도로를 닦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노랫말도 은유에서 직유화법 화자(話者)를 등장시킨다. 여성 화자는 노오란색 샤쓰를 입은 사나이 겉모습에 반하지만, 차츰 내면의 동요를 일으킨다. 노래는 이 상황을 산문 얽어가듯 이어가고, 멜로디는 4/4박자 스윙 리듬이다. 선율은 미국의 컨트리 송과 힐빌리를 본땄다.
이 곡은 1962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후 프랑스 샹송 가수 이베르 지로가 우리 말로 발표하여 인기를 더했다. 그녀는 서울시민회관에서 우리말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고, 프랑스어판 음반도 냈었다. 이후 동남아시아와 일본 가요계에서 이 노래가 유행하였고, 1970년대 이성애가 일본에서 리바이벌하여 인기를 얻었다.
신영균과 엄앵란 등이 주연한 영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속 주인공 남자는, 늘 노란 샤쓰를 입고 다닌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의 원조 격이다. 영화 속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여학교 체육선생이었다. 항상 노란 샤쓰만 입고 다니는 무뚝뚝한 사나이는 당시 인기 배우 신영균이었고, 이를 흠모한 여인네들은 인형 작가 엄앵란, 여성 가수 한명숙, 다방 마담 노경희 등이다.
이런 과정 중에 여성 가수는 아내가 도망간 작곡가 박암과 사랑에 성공하고,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인형 작가 엄앵란과 결혼에 이른다. 그 시절의 멜러 영화의 대세와 다를 바 없는 줄거리다. 이 영화는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후 무려 10만 관객을 동원하였고, 가수 한명숙이 영화배우로 거듭난다.
노래를 만든 손석우(1920~2019)는 장흥 출신, 목포 호남은행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1941년 작곡가 김해송(KPK악단장, 이난영 남편) 소개로 조선연예주식회사에서 기타연주를 시작한다. KPK악단 이름은 악단장 김해송(K), 연출가 백은선(P), 무대연출 김정환(K)의 이름 첫 글자 이니셜 조합이다. 이들은 1945년 10월 18일 서울 부민관에서, 주한 미군정청 사령관 존 하지 중장과 미 육군 6·7·40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위문공연은 하였는데, 이날을 KPK악단 창설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후 손석우는 1957년 영화 <청실홍실>로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데뷔하였다.
손석우는 2011년 대중가요 프로젝트 춘하추동 운영자에게 글을 보냈단다. ‘샤쓰’는 일본식 용어이지만, 우리 말 사전에 있는 것이라서 사용한 것이고, ‘노오란’은 멜로디 가락에 맞춘 감흥을 위한 것이라고. 또한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왜,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는가에 대하여서는, 당시 KBS 노래자랑 아나운서 임권택이 이렇게 사용한 것이 시발(始發)일 것으로, 또한 영화 제목의 영향일 것으로 언급했단다.
1935년 진남포에서 출생하여 용강에서 성장한 한명숙은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가 6.25 전쟁 중 인천으로 피난했다. 16세였다. 그 후 인천 태양악극단에서 활동한다. 18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인천 애관극장(愛館劇場) 무대에 올랐다. 애관극장은 인천부에 설립된, 우리나라 사람을 위하여 건립한 최초의 옥내 극장이다. 이후 축항사라고 개명하였다가 애관극장으로 환원시켰다. 이어서 19살에 미8군 무대 진출, 그로부터 8년 뒤에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대히트시켰다. 한명숙 선생 남편은 6.25 전쟁 참전 베테랑 국가유공자, 예비역 육군상사다. 둘 사이의 큰아들이 이명훈의 <내 사랑 영아>를 작곡한 이일권, 그는 드러머 겸 작곡가다. 그녀는 <노오란~>이후 <사랑의 송가>, <그리운 얼굴>, <비련 10년> 등을 발표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대중가수 등용문은 미8군 무대였다. 6.25 전쟁 이후 1955년 미8군사령부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이전해 온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미군은 우리나라에 200명 내외 단위부대 기준으로 300여 곳에 주둔했었다. 이들에게 위문공연을 펼치던 주체가 미8군 무대다. 이 무대는 미국인 전문가 7명에 의한 오디션 테스트를 거쳐서 선발했고, 1년에 2회 실시했는데, 베트남 전쟁 발발 이전까지를 전반부로 이후를 후반부로 구획해야 옳다. 전반부의 시장은 미군 30만여 명, 후반부의 시장은 미군 5만여 명이다. 베트남 전쟁터로 대부분 미군이 이동해 갔기 때문이다. 이 미8군 무대는 점점 쇠락했다.
이와 연계하여 대중 연예인 중계사업자가 등장하는데, 화양·유니버샬·삼진·아주·동엽 등이 등록된 기획단체들이었다. 이 미8군 무대 오디션에 통과한 사람은 AA·A·B·C급으로 분류되었고, 매일 오후 3시경에 회사에 모여서 전국 미군 클럽으로 트럭에 실려 보내어졌고, 늦은 저녁 시간에 출연자들의 숙소까지 모셔다주었단다. 이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예술이 최단 시간에, 급속하게 우리나라에 밀려온다. 1개월여 전에 미국 본토에서 불린 노래를, 미8군무대 출연진이 이를 신속하게 입수·연습을 한 후 무대에서 공연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문화의 서세동진(西勢東進)이었다.
2020년 외국인으로 우리나라 트롯 전국체전에 출전한, 오맛이갓김치팀의 미카차 발라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고, 한국 음식 중 김치에 반하여 한국에 눌러앉아 산단다. 갓스 파워는 나이지리아 출신, 나이지리아는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 경제지표가 가장 낮은 수준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코리언 드림을 품고 한국에 오면서 공항출입국사무소에서 만난 친구들이란다.
K-트로트는 굴절각을 다변화하면서 지구 전체를 감쌀 수 있는 감흥의 에너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트로트 열풍 무대에서, 난현지신음곡(亂現之新吟曲)의 노래가 창창(創唱) 되기를 기원한다. 어지러운 오늘을 음유·은유·직유 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백년천년 흘러갈 대중문화예술의 강 물결(무대) 위에 띄우기를 권한다.
유행가는 너무 음습(陰濕)해서도 안 되고, 권력이나 제도권의 눈치를 살피는 어가(御歌)이거나, 시가(時歌)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작품자들은 순간 이거나, 특정 모멘텀의 영감(靈感)으로 노래를 만들지만, 대중들은 시대 이념과 사람들의 감성으로 그 예술품에 감응(感應)한다. 그 반응의 온도계가 인기 척도이다. 대중 연예인들은 이 인기(人氣)를 에너지로 하여 살아간다. 대중 연예의 꽃은 유행가이고, 이 꽃을 파는 상인은 유행 가수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