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톤 체호프(1860-1904) 이후 단편소설이란 장르가 체호프 화 되었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그를 빼놓고선 단편소설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러 유명한 작가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어왔고 또 그를 닮고자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는, "체호프는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이다."라고 말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 중에 체호프의 단편전집을 챙겨간다고 했다. 카버의 경우, 실제로 알코올 중독을 앓았고,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위기의 미국 중산층으로 체호프보다 약간 어둡고 초현실적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와 닮아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신병원의 6호 병동에는 다섯 명의 정신병자들이 수용되어있다. 그곳은 감금만 있을 뿐 치료나 퇴원은 없다. 입원 환자 다섯 명은 지독하게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식사나 시설은 형편없고 서로 간의 대화도 없다. 의사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처음 부임했을 때 이곳의 열악함을 발견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포기하게 된다.
안드레이는 의사 일에 흥미를 잃고 지내다가 6호 병동의 젊은 환자 ‘이반 드미트리치’와 만나게 되고 이반과 삶, 철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 도시에서 처음으로 지성적인 교류 상대를 만났다고 느끼고 그 후 6호 병동을 자주 드나들게 되나 그 후 이상한 소문이 돈다.
이반 드미트리치는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살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어느 날 그의 형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고, 아버지가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섰다가 이후 사망하며 집안이 기운다.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사회와 이반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호송되는 죄수들과 마주친 이반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바로 그 자신도 족쇄를 차고 그들처럼 진흙 길을 걸어 감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피해망상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이반을 사로잡는다. 결국 주변 사람들은 이반을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에게 보이고 이렇게 이반 드미트리치는 6호 병동에 오게 된 것이다.
둘의 대화는 무척 흥미롭다. 의사는 자신의 위치에 맞게 환자에게 충고를 하는데 환자는 의사가 충고하는 모순을 반박한다. 병원 밖의 사람들이 더 부조리하고 모순적이며 인간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어째서 자신들만 갇혀 있어야 하느냐는 환자의 질문에 의사는 쇠창살 안이든, 따뜻한 서재든 장소에 상관없이 행복은 가능하다고 하며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평화와 만족은 내부에 있다고 말하자 환자는 유기체란 자극에 반응하는 법이라며 고통에 비명 지르고 비열함 앞에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삶이라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환자의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 보았는지 반문한다. 실제로 이반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컸고 병원의 환자들은 가난하여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이었고, 안드레이는 아버지에게 맞은 경험도 없고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린 경험도 없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알려지면서 의사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미쳤다’는 시선을 받게 된다. 미친 사람과 대화하며 어울리는 행동은 미친 사람에게나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임 의사 자리를 노리는 하급자까지 나서서 상황을 부채질하면서 그는 결국 병원에서 밀려난다. 결국 안드레이의 편안했던 의사의 삶은 완전히 파괴된다. 경제적 곤란에 시달릴뿐더러 급기야 발작적인 분노를 폭발시켜 버리고 이로 인해 6호 병동에 갇힌다. 장소에 상관없이 행복은 가능하다고 했던 의사의 신념은 갇히자마자 산산조각이 난다. 결국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내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다가 경비에게 난생 처음으로 폭행을 당하고 쓰러졌다가 다음 날 죽고 만다.
이 작품은 인간이 사고하고 철학 하는 모든 것들은 고통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당장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철학이, 고상함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반과 안드레이 모두 정신병자가 아님에도 모두가 그를 정신병자라고 말하고 격리함으로써 결국 그들을 진짜 정신병자로 만들었다. 즉, 사회적 억압과 폭력이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미쳤다고 몰아가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하며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나와 다르다고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이상하고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몰아가진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내 정신의 부조리, 마음의 모순부터 점검해야 할 시대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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