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간절함은 가 닿지 못할 곳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거나 진언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의 시그널인 셈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신은 완벽한 존재이니 그 완벽한 신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채우려는 의도다. 결국 자신 안의 자신을 부르는 간절함의 총체가 ‘굿’이다. 굿은 원시종교이며 샤머니즘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위해 행해지는 제사다. 사람들은 미신이라고 폄훼하겠지만, ‘굿’은 인류의 원형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신에게 의지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진언은 많다. 어리석음을 깨우쳐 진리를 깨닫는다는 진언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고 비밀스러운 지혜의 말이다. ‘옴 샨티 샨티 샨티’라는 만트라 진언이 있고 더 대중적인 진언이라면 ‘옴마니반메훔’이나 ‘아멘’이 있다. 모든 진언은 인간의 안녕을 위한 지구인들의 의식인 셈이다. 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한 행위가 기도이며 진언이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기도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며 삶을 위한 방편이다.
인간의 내면은 애초에 ‘황무지’였다. 그 황무지는 거칠고 메마른 죽음의 땅이었다. 다른 동물들처럼 육욕의 노예였으며 지글지글 타오르는 가마솥의 정욕을 먹고 사는 동물의 땅이었다. 인간은 거룩함이나 경이로움 따위는 없는 황무지에서 잔인한 짐승으로 살았다. 이 삭막하고 암울한 황무지에 인간은 신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약함을 인식하고 강함을 위해 기도하는 ‘깨어남’의 시발점을 연 것이 진언이다. 짐승에서 인간이 된 시발점이 기도이며 기도를 기도답게 한 것이 진언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황폐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을 묻고 있다. 단순하게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신적 불구가 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있다.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에 불을 지핀 것이 엘리엇의 ‘황무지’다. 이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며 신에게 바친 인간의 굳건한 미음은 변함없지만, 욕망과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타락한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다. 엘리엇은 부활할 수 없어진 유럽의 정신적 상태를 꼬집고 있다. 정신적 불구자가 된 유럽 사회는 인간성 상실의 황무지를 견디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다.
‘황무지’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첫 장 ‘죽은 자의 매장’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 행은 섬뜩하다. 잔인함은 죽음을 암시한다. 죽음을 통해 삶을 노래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도록 엘리엇은 셰익스피어, 단테 등의 작품을 곳곳에 인용하고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성배를 사용한 성배전설(聖杯傳說)의 생명의 원리와 부활에 관한 신화를 바탕으로 ‘황무지’를 썼다. 엘리엇은 유럽 사회를 휩쓸고 있던 전쟁과 파괴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사월은 잔인하여 꽃이 피지 못하지만, 이 재앙도 언젠가 끝나고 단비가 내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엘리엇은 ‘황무지’로 1948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엘리엇은 고전주의 문학을 하고 왕당파 정치를 했으며 성공회를 믿는 종교를 갖고 이십 세기 현대문학의 선구자가 된다. ‘황무지’는 5장 434줄의 시로 죽음으로 시작해 평화로 끝을 맺는다. 죽음은 욕망을 위한 굿이다. ‘황무지’는 굿이라는 제사를 통해 시의 진언으로 삶이라는 희망을 새겨 넣고 있다. 황무지에 다시 장미꽃이 피게 하는 단비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부활의 의미를 심어 놓았다. 눈으로만 읽으면 해독하기 어렵지만, 조용히 귀 기울여 들으면 ‘웨이얼랄라 레이어 월랄라 레이얼랄라’라는 후렴구가 진언처럼 마음에 깊은 평화가 잔잔하게 스며든다.
나는 기슭에 앉아
낚시질했다. 등위엔 메마른 들판.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런던 교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리고 그는 정화하는 불길 속에 몸을 감추었다>
<언제 나는 제비처럼 될 것인가>-오 제비여 제비여
<황폐한 탑 속에 든 아퀴텐 왕자>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분부대로 합죠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다다.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