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보면 가슴이 뛴다. 그의 펜 끝에서 풀려나온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삼매에 빠져들어 완전한 몰입상태가 되고 만다. 그는 언어 창조자이며 언어의 연금술사다. 그렇게 믿어야 직성이 풀린다.
21세기 문화의 아이콘 BTS가 있다면 16세기엔 그가 있었다. 그는 한 시대를 위한 작가가 아니다. 만 세대의 문화를 이끌어갈 작가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되는 작가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그의 작품이 읽히는 문화의 선구자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그는 셰익스피어다.
“맙소사,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처럼 신비로운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언어와 방법은 흥분과 황홀경으로 떨리는 붓과 같습니다. 그러나 보는 법을 배우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칭송했다. 그뿐이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이 셰익스피어다. 한 문학가가 신에 버금가는 찬양을 받는 일은 드문 일인데 그 이유는 당연히 그의 작품에 있겠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평범한 속에 숨은 비범함을 발현시킨 어떤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이야기는 인간을 진보시키는 매개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서사를 만들고 서사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킨다. 이야기의 힘은 인간에게 의식주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겨울밤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이야기는 상상의 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상상은 환상을 만들고 환상은 온 우주를 돌아다니고도 남는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영국은 비가 많이 오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이다. 어두침침한 방안에 앉아 설화를 만들어내고 신화를 창조하기에 좋은 곳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런 영국인들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의 작품은 초등학생도 좋아하고 교수님도 좋아할 쉽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썼으며 거기에 더해 개그 코드가 곳곳에 많아 박수치며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보다 자연을 더 좋아한 셰익스피어는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며 시 짓는 것을 즐거워했다. 열여덟 살에 결혼하고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온다. 그러나 쉽게 배우의 길이 열리지 않아 극장 마구간지기로 일하다가 우연이 마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 무렵 유럽은 전염병 페스트가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게 되자 극장도 문을 닫고 일거리가 끊어진 그는 희곡작가가 되기 위해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여러 편의 글을 썼는데 가장 인기를 끈 글이 ‘베니스의 상인’이다.
셰익스피어는 희극과 비극, 사극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발표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대 비극인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와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 시절에 쓴 작품들이다. 특히 16세기 라틴어를 써야 지식인 취급을 받던 시절인데 셰익스피어는 과감하게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로 작품을 썼다. 그것이 셰익스피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었고 영국인의 자존심을 살린 것이었다.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테마다. 사랑의 다른 말은 생존이며 사랑의 동의어는 삶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은 사랑에 근간을 둔 작품들이다. 사랑의 시를 쓰면서 셰익스피어는 얼마나 황홀하고 행복했을까. 나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사랑에서 발견한다. 사랑이 삶을 신나게 만들고 사랑이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을 알았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고요하게 정독하다 보면 성경이 주는 메시지와 같음을 읽을 수 있다. 불경이 주는 가르침을 알 수 있다. 그게 셰익스피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잘난 체하지 않지만 잘난 사람, 자존심 부리지 않지만, 자존심이 넘치는 사람, 그가 바로 셰익스피어다.
많은 것을 접어두고
하루를 닫은 뒤
잠들어 있을 때
내 눈은 제일 잘 보인답니다.
꿈속에서 당신을 봅니다.
눈은 감고 있지만
그런데도 내 눈은 어둠 속에
떠오른 당신의 모습으로 향한답니다.
나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늘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로미오를 사랑했던 줄리엣의 목숨을 건 사랑을 떠올리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던 햄릿의 치명적 사랑을 떠올린다.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사랑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당신을 만날 때까지’를 속으로 낭송하며 꿈속에서도 본 당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게도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 뒤돌아보며 사랑의 본성을 잃어버린 나를 반성한다. 셰익스피어의 시 ‘당신을 만날 때까지’처럼 내 눈은 어둠 속에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으로 향하고 있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