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예산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 초록산행

′부처님 오신 날′ 봉축

여계봉 선임기자

며칠 뒤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산세가 부처님 마음인 듯 너그럽고 부드러운 충남 예산의 덕숭산(德崇山)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이 산자락에는 대한민국 관광 대표 브랜드 '2023-2024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수덕사(修德寺)가 있다.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수덕사는 많은 고승과 석덕(碩德)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요람이기도 하다. 

 

해발 495m의 덕숭산은 숲과 바위, 계곡 등 그 모든 자연이 산자락의 절집과 어우러진 산이다. 덕숭산 정상에 오르면 동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낮은 구릉과 평탄한 들녘이 서로 이어지며 절경을 연출하는 명소인지라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덕숭산을 오르기로 한다.

 

수덕총림 수덕사의 일주문

 

초록빛으로 짙게 물든 수덕사 가는 길은 오색 봉축 연등으로 가득하다. 사하촌의 상가 거리를 지나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의 편액이 붙은 수덕사의 선문(禪門)에 도착하니 아름드리 소나무에 둘러싸인 수덕사는 고요하고 그윽하다. 신록 사이로 조팝나무와 이팝나무꽃이 하얀 얼굴을 내밀고, 산비둘기와 꿩 울음소리가 산객을 반긴다. 관람료를 내지 않고 절집 문을 들어서니 뭔지 어색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찰 문화재 관람료가 5월 4일부터 전국적으로 폐지되면서 늦은 감은 있지만 한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된다.

 

오늘은 수덕사 경내를 먼저 돌아본 후 ′벽초스님의 1080계단′를 따라 산길을 오르면서 소림초당, 향운각, 만공탑, 정혜사 등 산속에 흩어져 있는 암자와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고 덕숭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출발지인 수덕사로 원점회귀 하기로 한다. 산행 거리는 총 6km 정도이며,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수덕사와 덕숭산 안내도(예산군청 제공)

 

숲이 우거진 포장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부도전(浮屠殿)이 나오고 곧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 왼쪽에 있는 현대식 건물의 수덕사 미술관과 초가지붕의 수덕여관이 눈길을 끈다. 우리 근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생전 작품 활동을 하던 사적지 수덕여관이 수덕사 경내에 있어 색다른 흥미를 일으킨다. 

 

동백림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이응노 화백이 작품 활동을 했던 수덕여관

 

수덕사 안내문에는 수덕사와 덕숭산의 이름에 얽힌 전설이 적혀 있다. 옛날 이 지역 홍주마을에 살았던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사랑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 때문에 수덕사는 더 유명해졌는지 모른다. 일주문을 지나서 계단을 오르면 불법을 수호하는 두 명의 금강역사를 봉안하고 초서체로 쓴 편액이 달려 있는 금강문(金剛門)을 지나면 왼쪽으로 수덕사 7층 석탑이 서 있는데, 1931년 만공 대선사(滿空 大禪師)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있다.

 

수덕사 7층 석탑. 1931년 만공선사(滿空禪師)께서 건립한 석탑이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는 네 수호신을 봉안한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면 넓은 공터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한 황하정루(黃河精樓)가 나온다. ‘禪之宗刹修德寺(선지종찰수덕사)’와 ‘德崇叢林(덕숭총림)’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는 황하정루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코끼리 석등과 포대화상(布袋和尙)이 자리하고 있다. 황하정루의 지하에 있는 성보박물관에는 고승이신 경허와 만공스님의 유품과 불교 조각품, 불교 공예품, 불복장 등 문화적, 역사적으로 귀중한 유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없이 기워 누더기가 다된 만공선사의 법의와 소장하셨던 거문고가 유명하다.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는 규모에서 보면 다른 총림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그러나 수덕사가 총림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만공선사의 원력이 큰 구실을 했다. 한암, 경허, 수월 등 스님과 함께 일세를 풍미했던 만공은 고종 2년(1865) 중창불사를 일으킨 뒤부터 수덕사는 불도들의 수련장으로 제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만공 다음으로 법맥을 이어 받은 벽초(碧超)스님은 1912년 13세 때 수덕사로 출가해 만공스님에게서 계를 받았다. 스님께서는 주로 산문 안에서 대중지도와 제반 불사에만 정진하다가 1986년 5월 6일 입적하셨다. 법랍 74세, 세수 87세였다. 

 

성보박물관이 있는 황하정루

 

황화정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봉축 연등 뒤편으로 대웅전(大雄殿)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49호로 고려 충렬왕 때 건립된 현존하는 대웅전 중 최고령인 700년 역사를 지녔다.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라 단청이 벗겨져 있지만 고색창연함은 더 빛을 발한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 아미타, 약사의 삼존불을 모시고 있고, 대웅전 앞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연등이 달린 마당의 왼쪽에는 범종각(梵鐘閣), 오른쪽에는 법고각(法鼓閣)이 세워져 있고, 마당 앞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으면 방금 지나온 전각들이 거의 한눈에 들어온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의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대웅전 우측으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명부전(冥府殿)이 있고, 그 앞에는 백색 연등이 달려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삼성각(三聖覺)이 세워져 있다. 삼성각 앞에는 관음보살과 관음 바위가 있다. 이제 관음 바위를 지나 심우당(尋牛堂) 옆으로 가면 이정표와 함께 덕숭산 노선안내도가 있다. 담을 따라 돌아나가면 신록이 짙은 계곡을 따라 형성된 계단을 밟으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벽초스님의 1080계단을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메인 등산코스인 대웅전부터 정혜사에 이르는 1,080개의 돌계단은 벽초스님이 손수 다듬고 가꾼 것이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면석불(四面石佛)을 만난다.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고 계곡을 잇는 석교(石橋)를 지나 오르면 우측으로 너른 바위를 받치고 있는 석벽(石壁)을 지난다. 좌측으로는 암벽 옆으로 형성된 계단, 우측으로는 계곡을 끼고 오르면 만공스님이 주석하던 곳인 소림초당(小林艸堂)에 이른다. 소림초당으로 들어가는 갱진교(更進橋)에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만공스님이 주석하던 소림초당

 

다시 계단을 오르면 1924년 만공스님이 자연석인 바위를 깎아 조성한 거대한 관음불상를 만난다. 만공선사가 꿈에서 석가세존을 만난 뒤 조성했다는 불상은 본래 직벽으로 이었던 바위를 깎아내고 앞에 석단을 덧대었다. 두 손에는 정병을 쥐고 상호 가득히 머금은 관음보살의 미소에는 일체중생의 고통을 거두어 주는 자비로움이 엿보인다. 관음불상 오른쪽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약수터가 있고, 그 옆에 향운각(香雲閣)이 있는데, 이곳 역시 스님들께서 스님들의 정진 수행처이다. 

 

자연 석불인 관음보살 입상

 

향운각에서 40m 정도 올라가면 만공탑이 나온다. 12각형 지대석 위에 원형 굄돌을 놓고, 그 위로 세 개의 다각형 기둥을 세운 다음 각 기둥 사이에는 세 개의 직사각형 검은색 돌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보름달처럼 둥그런 조형물을 올려놓았는데 탑 정면에는 ′만공탑′이라고 새겼다. 왼쪽에는 ‘世界一花(세계일화)’, ‘百艸是佛母(백초시불모)’라는 스님의 친필을, 오른쪽에는 스님의 간단한 행적을 적은 글과 남긴 법훈을 새겼다.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만공탑

 

만공탑을 출발하여 정혜사를 향해 계단을 몇 발자국 오르면 우측으로 입석이 있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길을 따라가면 자연 석문인 진여문(眞如門)이 있다. 정혜사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바위로 된 통천문을 지나면 부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부처는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자연 석문 진여문(眞如門)

 

만공스님이 세우신 참선도량 정혜사의 능인선원은 덕숭총림의 선원으로 많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 중이다. 정혜사를 지나 평탄한 길을 걷다가 작은 계곡을 지나서 계단을 오르면 전월사에 도착한다. 수행처이므로 석문에는 ‘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암자에서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시간을 쫓아가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시간을 외면하고 살지는 않는다. 저잣거리에 사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시간과의 약속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고 그런 질서 속에서 산다. 새벽에 도량을 돌며 목탁 치고, 범종치고 예불한다. 수행자들의 빈틈없는 일과가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은 편안하고 미소가 깃들어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노송과 바위가 어우러진 전망대를 지나니 화강암에서 풍화작용으로 떨어져 나온 마사토 구간이 나온다. 이어서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덕숭산 정상이다. 

 

칠장산(492m)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이어져 나오는 호서정맥이 충남 보령 백월산(560m)에 이르면 북쪽 방향으로 금북기맥을 분가시킨다. 백월산을 뒤로하는 금북기맥이 홍성읍 서쪽을 치달아 이어지며 일월산(394m)을 들어 올린 다음 홍동산(310m)을 지나 빚어놓은 산이 바로 덕숭산이다. 

 

덕숭산 정상석(495m) 뒤로 가야산이 보인다.

 

덕숭산에서 계속 북진하는 금북기맥은 가야산(678m)-석문봉-일락산-은봉산에 이른 다음,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서산 팔봉산(362m)-태안 백화산(284m)을 지나 마지막으로 지령산(220m)을 빚은 후, 여맥(餘脈)들은 서해로 가라앉는다.

 

덕숭산 정상에서 북쪽에는 가야산과 원효봉이 뚜렷하게 조망되고, 동쪽으로는 용봉산과 수암산, 둔리저수지와 그 뒤로 충남도청 신도시가 조망된다. 남쪽으로는 수덕사와 홍동산, 덕산면 평야가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오서산이 조망된다.

 

 덕숭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과 석문봉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아함경(阿含經)에 ′산 정상을 올라가 보라′는 말이 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산 아래처럼 좁은 소견으로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산을 내려선다. 평일이라 산길은 적막하고 고즈넉하다.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마음에 충만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청솔 그늘 아래 유순한 산길이라 가슴에 솔내음도 켜켜이 잰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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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3.05.25 10:51 수정 2023.05.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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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