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린이들의 지능과 감성은 물론 성품도 어른들 뺨치도록 조숙해가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어렸을 적엔 그렇지 않았는가. 구제불능일 정도로 타락한 어르신들을 닮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곱 살짜리 내 외손자 일라이자Elijah가 태권도 클라스 견학을 갔다 오더니, 레슨은 받지 않겠단다. 숫기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주먹과 발길질을 하면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서란다. 그러더니 좀 아쉬웠는지 할아버지가 보고 난 종이신문을 한 장씩 쫘악 펴서 양 손으로 잡으라더니 처음엔 손가락으로 다음엔 주먹으로 그리고 발로 야아앗 소리를 신나게 질러가면서 신문지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안 가득히 산산이 부서진 종이 조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긁어모아 비닐 쇼핑백에 잔뜩 넣어 묶은 종이 공들을 농구나 축구 볼로 열나게 한참 던지고 차고 노는 바람에 나도 숨이 차면서도 무아지경의 즐거운 금쪽같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내 주위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365일 뛰던 40대 50대 재미 한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1970년대 영국에 살 때를 떠올리게 된다. 런던 같은 큰 도시는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작은 동네 가게들은 일요일엔 문을 닫고 주중에도 수요일과 토요일엔 아침 9시나 10시부터 정오까지만 영업하며 평일에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이 돈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해서인지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동굴답사니, 조류탐사니, 독서클럽이니, 브리지게임 모임이니, 수도 없이 많은 동호회를 조직하거나 아니면 가족 단위 또는 이웃 간의 친목으로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은 차를 준비해 공원이나 경치 좋은 곳으로 소풍을 간다.
내가 1980년대 미국 뉴저지 주 오렌지 시에서 가발가게를 할 때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한 두 주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오면서 매상이 많이 줄어 들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별로 상관이 없었다. 가발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게 문 닫기 전이나 다시 연 다음에 사가더란 얘기다. 흔히들 먹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느냐 또는 일하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일하느냐고 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린 모두 정작 어린애들처럼 순간순간 아무 거라도 갖고 재미있게 놀기 위해 산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은 언제 어디에나 작은 것으로부터 오며 티끌 모아 태산이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큰 것만 탐내다가는 작은 것 전부를 다 잃게 되는 대탐소실大貪小失이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