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도 나의 인생에서 하나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강의는 2023년 4월부터 시작했고 지금 뜨거운 여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즈음부터 이 책을 읽으며 강의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원고도 완료될 것입니다. 이번 원고는 왠지 남다른 애정이 가기도 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노안이 독서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나의 욕망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볼 수 있다면 보려고 또 눈을 뜰 수 있다면 떠 보려 애를 써 보는 것입니다.
어제는 남산을 올라 가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사진을 찍었던 곳을 다시 찾아 가 본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홀로 남겨진 남자의 위축된 모습은 아직도 마음을 경직되게 해 놓습니다.
한번은 보고 싶다면서 학교로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찾아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다시 강의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주일 후, 아버지는 집에서 주무시다가 죽음의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만남이 있은 뒤에도 보고 싶다며 전화를 해 왔고, 그때마다 다음에 보자며 살짝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정말 미안했습니다.
요즈음 유독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납니다. 그러면서 해야 할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가 걷다가 멈춘 지점을 찾아 가 거기서 다시 걷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와 ‘사랑하다’는 다른 듯 같고 또 같은 듯 다릅니다. 아버지는 늘 마음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마음’, 이것이 삼박자가 되어 돌고 또 돌아가고 있습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마음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삼위일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엮어 놓습니다. 마음으로 엮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때로는 마음이 타 들어가는 고통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있어서 인생의 나이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서 무늬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늬가 있어야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굴곡이 있어야 음양이 형성되고, 그런 것이 형성되어야 태극이 완성됩니다.
삶과 사랑은 늘 한 몸처럼 따라 다닙니다. 니체도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운명의 다른 말은 한계이고, 한계에 대한 다른 말은 현상이며, 현상의 원리는 오로지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만 설명됩니다. 이런 현상을, 이런 한계를, 이런 운명을, 이런 시간과 공간을 삶이라는 거대한 개념으로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랑하려면 사랑할 줄 아는 지혜부터 지녀야 합니다. “펜테질레아로서의 뮤즈 — ‘유혹하지 못하는 여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사라져버리겠다.’ 만약 뮤즈가 한번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녀의 예술은 또 다시 종말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적인 종말일 수도, 희극적인 종말일 수도 있다.”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 속에 남겨 놓은 잠언입니다. 아킬레스를 사랑했지만, 사랑을 얻지 못하자 펜테질레아는 죽기로 작정합니다.
뮤즈는 창작을 위해 애를 쓰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들입니다. 뮤즈는 창작하는 정신들을 창작의 세계 속으로 유혹하는 유혹자들입니다. 그런데 뮤즈가 유혹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녀가 한계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때는 예술도 종말을 선언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열려 있습니다. 그것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또한 운명에 맡겨야 할 일이 될 뿐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