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중평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5월 18일 10시에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2년 연속 참석한 것이다.
기념식 주최 측에서는 올해 기념식 주제는 ‘오월 정신, 국민과 함께’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킨 오월 정신을 기억하고, 국민과 함께 계승함으로써 하나 되는 대한민국으로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하였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며, "우리가 오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한다면,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런 실천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대통령이 이렇게 오월 정신을 공식화하니, 국민의 관점에서, 오월 정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월 정신이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는 미국에서 시작된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시작된 유신 정신이다. 미국의 정신은 청교도 정신이고, 일본의 정신은 근대화 제국주의 정신이다.
광주의 오월 정신은 광주 시민의 오월 정신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주창한 청교도 정신에 뿌리를 둔 자유민주주의 정신이다.
박정희의 정신은 5월 16일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인천, 포천 등에서, 군대가 일시에 일으킨 군사 정변으로, 5월 18일에 군사 정변을 마무리한 군인정신에서 시작된 조국 근대화 정신이다. 이 정신은 일본을 근대화시킨 일본의 유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의 516 정신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 정신이 박정희 장군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의 정신이었다. 그가 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516 정신을 만들어 내었다. 그 정신은 국가가 중화학공업 국가와 산업국가로 발전하면서, 박정희 정신으로 주창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5월 정신에는 군대의 5.16정신과 광주의 5.18정신의 2개의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518정신이 516정신을 토양으로 하여 자라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5.18 기념식을 하기 위하여, 광주 묘역에 갔으므로, 광주에서 일어난 5.18정신만을 말하였다. 윤 대통령은 군대가 서울의 6관구에서 출발하여, 한강을 넘어온 5.16정신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토양이 없었던 시대였다. 국가에 중산층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자유민주주의가 생겨날 데가 없었다.
당시에 대한민국은 6.25사변을 치른 지 얼마 안 되는 세계에서 최빈국이었고, 미국의 경제 원조와 군사 원조로 겨우 연명해 나가는 처지였다. 박정희 장군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을 벤치마킹하여 군사혁명을 일으켰고, 다수의 국민은 군사혁명을 지지하였다.
일본에 만주 인맥을 가지고 있었던 박정희 장군은 일본의 도움으로 경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물론 미국의 도움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공업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도운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정신은 새마을 운동과 부국강병에서 나타난다. 그의 정신을 집대성한 것이 교육헌장(敎育憲章)이다. 그가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 것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국가 철학이다. 중산층을 길러야 중산층에서 민주주의가 배양된다는 경제철학도 있다. 이 역사 철학은 경제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 1만 불을 넘으면 민주주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국민소득 1만 불을 넘자마자 김재규에게 시해당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최전방에서 공산주의의 최전방인 북한과 대척점에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마지노선이 대한민국이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지켰다고 말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지켜 줄 수 없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은 무너졌다고 말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지킨 효과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결하는 냉전체제에서,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에 소련의 붕괴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 역사의 변곡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가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북한이 간첩을 내려보내고, 국내에서 주사파들이 생겨나는 1980년대를 보내야 하였다. 나라 안에서, 나라 밖의 현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이 등장했지만, 그들은 김일성의 졸개에 불과한 주사파들이었다. 그들은 민주화를 부르짖었지만, 그 민주화는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의 집단주의 인민민주주의였다. 이른바 주사파 민주주의였다.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한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주체사상이 편승하여, 순수한 민주화운동을 무장 폭동으로 바꾸려 했으므로, 성격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계엄사령부는 이를 무장 폭동으로 규정하였다. 일부 가담자들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민주화운동은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민주주의 운동이다. 이 민주화운동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5월 정신으로 말해지고 있다.
이 민주화운동에는 첫째, 순수한 광주 시민을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있다. 이들이 비난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되는 세력이다. 5월 정신이 이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열심히 주체사상을 학습한 주사파 세력이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여 감옥에 보내고 정권을 탈취하였다. 셋째, 남파 간첩 세력이다. 이들은 국군에게 학살자라는 누명을 씌었다.
미국이 공개한 비밀이 해제된 국무부 서류는 간첩과 김대중이 광주 폭동을 기획했다고 기록하였다. 또 북한군 특수부대로 의심받는 무장 세력이 6차례 교도소를 군사작전으로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 사망자들은 남한에 없는 DNA를 남겼다고 한다. 북한에는 이들의 묘역이 있고, 이들 중에 탈북자들도 있다.
5.18 사태에 대해서는 남한 내에 2개의 시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는 폭동으로 보는 시각과 다른 하나는 민주화운동으로 보는 시각의 두 가지 시각이다. 폭동으로 보는 시각은 당시 계엄사령부의 시각이다. 미국무부 CIA의 시각도 계엄사령부의 시각과 같은 시각이다. 미 국무부 CIA의 비밀이 해제된 문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1980년 6월 3일에 작성된 미국 국무부의 보고 문건
that riot was professionally-instigated.
그 폭동은 전문적으로 선동되었다. (선동은 공산주의자의 전유물이다.)
The riot was the work of commu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according to MLC account
MLC(martial law command,계엄사령부)의 설명에 따르면 그 폭동은 공산주의 요원들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의 소행이었다.
thrust of the report was that riot was professionally-instigated
보고서의 요점은 폭동은 전문적으로 선동되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오월 정신을 계승해야 할 자산이라고 말한 기념사에는 적대세력의 대한민국 파괴 공작(The riot)을 포함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반국가적 세력의 반국가적 행위(The riot)마저 오월 정신에 포함한다면, 이는 이 나라가 대한민국 주도로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이 나라를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오월 정신을 헌법정신에 삽입한다는 것은 당위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적대세력의 반국가적 행위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민족정신이 용납할 만큼 승화되었을 때, 그때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오월 정신에 정체성이 모호해진 5.18정신에 5.16정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있게 한 정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