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진중에서 읊다

이순영

그때, 조선은 나라를 접었어야 했다. 이기적이고 책임감 없고 교활하고 리더십 없는 선조를 끝으로 나라 문을 닫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어야 했다. 신하들은 임금이 시기심이 많고 모질고 고집이 세서 임금 밑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통탄했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자 국가와 백성을 손절한 약삭빠른 선조다. 그래도 백성들은 왕을 버리지 않았다. 착한 백성이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버릴 수 없어서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윗동네 김일성은 이씨조선이 오백 년을 집권해 권력을 누렸으니 김씨조선도 오백 년쯤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야욕을 부리고 있다. 미치광이들은 나쁜 역사를 학습한다. 그래서 역사는 잘 만들어야 한다. 그 책임은 리더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되먹지 못한 리더를 만나더라도 국민이 똑똑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나라가 망하는 건 리더의 잘못보다 그 리더의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는 구성원들 때문이다. 

 

16세기 선조가 집권한 조선이 망해가고 있을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급변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정세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편안하게 왕노릇에 빠져 있던 선조에게 임진년에 일어난 왜란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이미 문을 열어 개방한 일본은 전국을 통일하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시아 최강으로 떠올랐다. 최강의 정예군을 갖춘 일본은 전국 통일로 인한 불만 세력들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자 했다.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1592년 조선을 먼저 침략한다.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올라온 왜군을 피해 선조가 제일 먼저 도망간다. 이 얼마나 비겁하고 애통한 일인가. 초등학교 반장도 하지 않는 일이다. 

 

난세에 영웅 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학자, 철학자, 시인, 장군 등 영웅들이 선조가 집권했을 때 빛을 발휘한 사람들이다. 율곡, 퇴계, 이항복, 이원익, 윤두수, 정탁, 권철, 오탁, 신흠, 이시언, 허균, 이정암, 이덕형, 기대승, 정철, 윤선도, 서경덕, 황진이, 이지함, 류성룡, 이순신 등 영웅들의 전성시대였다. 16세기 조선에 찌질이 왕 선조가 있었다면 비범하고 용맹하고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조가 조선을 버렸다면 이순신은 조선을 살렸다. 나는 이순신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 사람의 사랑이 이토록 정답고 애잔할 수 있을까. 자신을 파멸시키고 사형선고까지 내린 사람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 다시 살아나 전쟁터로 가면서도 불평하지 않은 사람,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를 담담하게 이해하지만, 그의 진정한 마음은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임진년이 이순신의 삶을 송두리째 전쟁에 바치게 했지만, 이순신은 절망하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저 남쪽 전쟁터에서 깊은 가을밤에 홀로 앉아 ‘진중에서 읊다’라는 시를 지어 스스로 자신을 위로한다.

 

물나라에 가을바람 서늘한 밤

쓸쓸히 홀로 앉아 생각하노니

어느 때에 이 나라 편안하리오

지금은 난리를 겪고 있다네

공적을 임금은 낮춰 보련만

이름은 부질없이 세상이 아네

변방의 근심을 평정한 뒤엔

도연명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

 

전쟁터에서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는 사람 또한 몇이나 될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삶은 얼마나 지리멸렬한 고통이었을까. 편안하지 못한 나라, 편안하지 못한 백성, 편안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 아니던가. 이순신은 정돈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난중에 일기를 쓰고 시를 쓰는 건 그가 비범해서가 아니라 인격이 수양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흩어지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은 평정심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죽음으로 이겼다. 

 

‘변방의 근심을 평정한 뒤엔 도연명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한 이순신은 도연명을 만나 귀거래사하며 유유자적하고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이순신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으로 기억되어 역사를 이어오고 있지만 그 역사는 우리 모두의 역사다. 이순신 구한 진실한 역사다. 그는 무장이었지만 선비이며 시인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백성에게 국가에게 진실한 시인이자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말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06.01 10:59 수정 2023.06.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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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