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을 하기 전 친정 식구들과 가족여행을 종종 다녔고, 숙소에 방이 두 개 이상이 아니라면 으레 가족이 다 같이 한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 날이면 저는 아빠가 코 고는 소리에 잠자리가 불편했습니다.그때의 아빠가 코 고는 소리에 엄마가 매일 밤 괴로울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 후 코 고는 남편을 옆에 둬보니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아빠가 코 고는 소리는 무척 불편했지만, 놀랍게도 남편이 코 고는 소리는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코 고는 소리는 제가 잠드는 걸 많이 방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 옆에 남편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안심벨과 같았습니다.그러니 제 엄마 역시 아빠의 코 고는 소리에 편안한 잠을 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맨 마지막 장에는 남편 인표가 먼저 잠든 안은영의 얼굴을 보고 잠이 드는 게 좋았다며, 잠든 그녀의 얼굴이 인표의 수면등이라고 사랑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표에게 은영의 얼굴이 그러했듯 제게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수면등인 셈입니다.
올해 5월은 우리 부부의 결혼 10주년입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마음은 표시해야’ 하고 ‘행사나 기념일 같은 것은 챙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달을 맞이한 5월 여러 기념일을 챙기다 보니 결혼기념일은 제일 후순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업무로 바빴던 주중에 결혼기념일이 있어 10주년 기념일을 제대로 축하하지 못하고 보내고 말았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나만의 수면등인 소중한 남편과의 결혼 10주년을 꼭 기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순간이 어느새 10주년이 되었듯이 인생의 주요 장면의 순간들을 기념하다보면 또 그것은 개인의 역사가 될 겁니다. 이렇게 쌓인 개인의 역사가 힘든 순간에는 기둥처럼 제 인생을 떠받쳐줄 것이고 또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데 함께 젓는 노가 되어줄 것입니다.
모두에게 오늘을 특별하게 살아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저처럼 특별한 기념일은 아닐지라도 초여름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는 이유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좋은 날이겠지요? 6월의 푸른 여름 더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그저 충전이 잘된 날, 완전히 차오른 은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드는 게 좋았다. 그 빛나는 인표의 수면등이었다.”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민음사, 2020, p.279.
K People Focus 필진 스텔라 백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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