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을 규정할 때, 출신학교, 직업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될 때 그 인간은 대체될 수 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다른 아이가 입학을 한다. 그가 직장을 그만두면, 잽싸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된다. 그래서 은퇴한 사람들의 눈빛은 공허하다. 스스로 자신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이제 아무도 메꾸고 싶어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그는 텅 빈 자리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보면, 이러한 생각은 전도몽상(顚倒夢想), 거꾸로 된 잘못된 생각이다.
학생이 없으면 학교도 없다. 직장인이 없으면 직장도 없다. 학교, 직장은 실체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존재하는 건, 개개인이다. 한 인간들이다. 이렇게 실제의 세상을 보게 되면, ‘그’라는 한 인간이 지극히 소중해진다.
한 인간은 어느 인간,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단독자인 것이다. 한 인간을 이 세상의 부품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발적인 노예이다. 그는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주인님이 행복하실 수 있을까?’ 그는 주(主)가 된 이 세상의 충실한 종이다. 그들은 항상 탄식한다.
“인생이 너무 허무해요. 산다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쉼 없이 자신을 발명해가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여보게
우리 잠깐 쉬어가세나
그동안 뒤도 안보고
숨 가쁘게 뛰지 않았는가
쉬어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걸세
- 김승희, <내가 나에게> 부분
뒤도 안 보고 숨 가쁘게 뛰는 삶, 노예의 삶이다. 노예는 항상 분주하다. 주인님의 행복을 위해서 분골쇄신한다.
시인은 쉬어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 시대의 예언자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