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부천에 가면 꽃길만 걷게 된다.
소사역 2번 출구에서 원미산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부천 둘레길 1구간의 들머리가 나온다.
나무 계단에 올라서자마자 연초록 숲속은 영산홍이 내뿜는 꽃불로 활활 타고 있다.
영산홍(暎山紅)은 ‘산을 붉게 물들이는 꽃’이란 뜻이다. 정열적인 모습으로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겨우 5~7일밖에 안 되지만 아름답기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이지만 향기가 전혀 없다.
조선조 역대 왕 중에 연산군(燕山君)이 이 꽃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연산홍(燕山紅)이라 불리기도 했다.
영산홍 / 서정주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잠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영산홍이 소실댁이 되어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마치 뒤꼍에 밀려 사는 슬픈 이야기다. 세상에 못할 짓이 소실댁인데 영산홍은 왜 소실이 되었을까.
복사나무는 예로부터 신령스럽고 길한 존재로 여겨왔다. 옛날 사람들이 굿을 할 때도 이 나무 가지를 가지고 신령 장수대로 써서 귀신을 쫓았다고 알려진다. 또 부적에 찍는 도장은 반드시 복사나무로 조각해야 했고, 어린아이 돌에는 복숭아 모양이 새겨진 반지를 끼워주는 건 잡귀를 쫓아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복사꽃과 먹으면 장수한다는 복숭아를 여인과 결부시켜 만들어낸 이야기가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옛 중국의 후한 때 유신과 완조라는 두 사람이 천태산에 올라 복사나무 있는 곳에서 여인들과 지내다 고향 생각에 하산해 보니 7대가 지났더라는 이야기를 보면 옛사람들은 복사꽃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지 않았나 생각된다.
봄날이 끝나기 전, 부천에 가면 꽃길만 걷게 된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