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의 발달은 인류의 과학적 사고의 깊이와 지혜의 발달로 인한 문화 수준과 비례해서 발달되어 왔다. 신석기의 덧무늬토기, 청동기의 민무늬토기, 철기시대의 덧띄토기, 원삼국시대의 쇠뿔손잡이항아리, 고려시대의 고려청자, 조선시대의 백자, 옹기문화, 유기, 철, 금, 은, 스테인레스, 각종 합금 등의 철기그릇, 크리스털 그릇, 사기그릇, 플라스틱그릇, 나무그릇, 스티로폼 그릇, 신소재 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릇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식물을 담았을 때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지 않는 그릇, 환경을 해롭게 하지 않을 친환경소재의 그릇 등이 등장하고 있다.
나라마다, 각 지방마다 특정한 고장이나 나라에서 나는 소재나 전통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크기, 모양, 디자인,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든 다양한 그릇이 나오고 있다. 쓰임에 따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기능성 그릇에부터 건강에 이로운 그릇, 디자인이 뛰어나 누구나 가지고 싶은 그릇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릇에 우리는 음식물을 담아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간장그릇,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막걸리 사발, 음료수 그릇, 개밥그릇, 바가지, 바구니, 등등의 그릇을 사용하여 특정 음식물을 담기에 좋은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밥그릇에 국을 담는다거나, 국그릇에 밥을 담고, 반찬그릇에 밥이나 국을 담을 수는 있지만 만든 그릇의 목적이 달라지므로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불균형이라고 한다. 균형이 깨진 상태는 보기도 민망하고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품위를 잃어버린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이 무식해서 일본사람의 눈에 값나가는 조선시대 백자기를 개밥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는 촌로를 발견하고 그 그릇을 가져갈 목적으로 필요 없는 개까지 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일본인은 촌로에게 그릇을 팔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개를 비싼 값으로 사들이면서 덤으로 개밥그릇까지 달라고 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는 문화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기 위한 기만술책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은 술책으로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싼값으로 만족하게 구입하게 만드는 상술을 발휘하는 장사도 있고, 인간관계 적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간장 그릇에 밥을 넣어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현상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 사회는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의 인격과 능력은 그릇의 크기와 비슷하다. 간장종지에 밥의 인격을 담는다거나 밥그릇에 조금 필요한 간장을 담아 사회 곳곳의 요직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 사회는 잡음이 끊일 날이 없을 것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작은 그릇에 담아 쓰거나 능력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속이 좁은 사람을 큰 자리에 앉아 있다면 사회 혼란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능력주의 사회는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고 건전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능력이 없으나 윗사람에게 빌붙어 아부나 일삼고 남을 중상 모략하는 소인배들이 빠르게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사회 시스템은 불건전한 사회를 만들게 된다.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게 된다. 능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랫사람의 능력을 빼앗아 마치 자기의 능력처럼 과장해서 내세우는 일밖에 없지 않겠는가?
능력이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면 많은 사람이 희생하게 되는 불건전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에서 보았다.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책임감 없는 임시 선장으로 항해를 맡겨 꽃다운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사명감 없는 지도자를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꼈는가?
선장은 배를 잘 항해할 수 있는 능력과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 선장이 되어야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돌팔이 의사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하라고 자기 몸을 맡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돌팔이의사가 병을 잘 치료하는 것처럼 허풍을 떨고 광고하고 다녀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병원비만 날리고 병을 고치지도 못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성형수술을 잘못하여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평생 차라리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얼굴 자체를 망가뜨려 문밖을 출입도 하지 못할 정도로 흉한 얼굴을 만들어버린 사례들이 종종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짜가 판치면 사회는 믿음이 깨진다.
건전한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여야 한다. 박사학위가 문제가 아니라 박사학위 이상의 능력을 겸비한 못 배우고 천한 사람일지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히는 장영실을 발탁한 세종임금님의 능력주의 인물 기용은 국사 발전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기용하기 보다는 능력 없는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이 탄로 날까 봐 능력 있는 사람을 헐뜯고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 사회는 병든 사회다. 자기 출세만을 위해 능력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빼내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떠들어대어 윗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사람은 평생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양심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출세를 위해 남의 능력을 훔친 사실을 남에게 숨기며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양심은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날들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종교기관에 찾아가 참회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까 과욕을 부리지 말아 달라고 종교종사자들이나 성인들이 이르지 않던가? 자기 능력이 없는 데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지 말고 자기 능력부터 키워가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필요할 때 나서라. 교육자는 국민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가 밝다. 제 욕심만 차리려고 승진에 매달리지 마라. 너는 권력의 노예가 되고 윗사람의 비위나 맞추고 다니는 주체성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한번 주체성 없이 살아간 사람이 높은 자리 오른다고 하여 주체성이 되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여 부하직원 눈치 살피고 학부모 눈치나 살피는 노예 행위로 일관된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높은 자리가 가시방석이요. 얼굴 똑바로 뜨고 어디 사람답게 살아가겠는가. 그 자리가 고통스러운 지옥이 될 것이다. 만약 얼굴 똑바로 뜨고 당당하다면 위선이요, 교육자적인 양심을 저버린 철면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타고난 그릇이 있다. 제 그릇의 크기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게 순리이다. 큰 그릇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 능력이 없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을 좇아가려고 하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 남의 그릇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욕심을 부리면 괴로움이 뒤따른다. 마음 편하게 살아가려면 욕심을 줄이고 진실해야 남들이 자신의 인격을 높이 쳐주는 법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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