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도 담산사
그래서 떠났다. 여름 한 철 사랑했던 봉선화가 질 무렵 나는 떠났다. 답답한 서울을 뒤로 하고 바다를 건너 떠났다. 지천명의 가을은 난감했다. 거둘 것 없는 허허로움은 신기루 같은 삶 안으로 가을처럼 치달아 오고 우두자국처럼 남아있는 여름의 잔상은 먹먹한 가슴과 편두통 사이를 부랑하면서 내 발바닥을 찔러댔다. 나는 습관처럼 짐을 챙겼다. 나의 가장 힘 있는 거칠고 후진 ‘마음’만 챙겨들고 청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낯섦으로 더 치열해질 ‘살아있음’의 명랑한 세상은 내게서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남을 멈출 수 없다. 길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므로…….
호들갑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도’를 ‘칭다오’라고 사대했다. 오천년간 정답게 불렸던 이름이 어느 날 갑자기 본토발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글로벌이라는 대세로 말이다. 지명이나 인물의 우리발음을 이제 다시 중국어 발음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북경, 서안, 공자, 맹자, 유비, 공명, 이백, 두보, 도연명, 당태종, 양귀비……. 역사는 이렇게 느닷없는 자들의 오만으로 갑자기 정체성을 잃거나 시류에 편승된다. 아주 오랜 시간 우리의 몸속에서 연료처럼 쓰인 진정성은 출처 없는 유물처럼 역사 속으로 박제되어 가고 있다. 착잡한 언어의 사대를 걱정하면서 나는 청도공항에 첫발을 내딛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마 나를 위해 숭산스님은 이렇게 노래했나 보다. 떠날 때는 떠나는 것만 생각하고 돌아올 때는 돌아오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불안하고 위태롭고 혼란스러워서 삶은 경이롭지 않은가. 바다가 매일 평온하다면 그 평온 때문에 나약해지고 나태해져 괴로울지 모른다. 그게 우리네 인생인데 걱정한들 무슨 소용인가. 애달파 한들 나아지는가. 걱정의 보자기로 싼 삶은 끝내 새로워지지 않고 희망은 멸절해 버릴 것이다. 청도에서 나는 걱정 따위는 바다에 던져 버리고 명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담산사 입구에 도착하자 향을 내미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마주했다. 가만히 보니 부처가 할머니 손에 계셨다. 몇 개의 향으로 저녁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할머니의 손이 부처였다. 늙어 비틀어진 손의 온기는 향으로 베어들고 향은 할머니의 온기를 온전히 부처에게 바쳤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온기의 근원은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은 눈물 나게 아름답고 가슴 저미게 고통스럽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보며 잠시 현기증이 일어 어질했다.
그립고 안타까운 사랑이라는 이름의 여인들은 모두 부처이고 그래서 부처는 이 우주 안에 골고루 아낌없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러니 나와 세상은 인연 아닌 것이 없는가 보다. 나와 스치지 않은 것은 없고 나와 관계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인데 생각해보면 인연의 다른 이름은 ‘집착’일지 모른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함부로 인연 맺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생하고 멸하는 존재이므로, 육체의 원형은 사라져도 육체의 원소는 이 우주 안에 남아 태어나고 죽고를 수없이 거듭하지 않던가. 그러니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인데 인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고 우주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인연을 맺고 집착할 것인가. 함부로 ‘인연’이라고 지껄이는 얄팍한 지식의 개소리를 우리는 구분 지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모를 뿐이다.
나는 대웅보전 앞에 향을 피워 놓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마침 대웅보전 안에는 불자들이 염불행선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아미타파 아미타파 아미타파’를 염불하며 행선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하고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불자들의 얼굴은 인자하고 자비로운 부처를 닮아 있었고 나는 행선하는 불자들의 모습을 보느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대웅보전 옆으로 내려와 보니 무료로 가져가라고 많은 불경과 불교잡지, 그리고 불교책들을 진열해 놓았다. 나는 대여섯 권을 가방에 넣고 기뻐하고 있는데 대웅보전 옆, 큰 나무 위에 어떤 소녀가 떡하니 누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절 안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경을 쓰지 않고 나만 흘깃 흘깃 거렸다. 가만히 보니 정신줄을 놓은 소녀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부처님이 계신 곳이어서 다행이다. 소녀는 정신을 회복할 것이고 부처님은 소녀의 마음까지 보듬고 치유해 주실 것이기에 이곳 절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나 보다. 소녀의 노래가 대웅보전 안으로 퍼져 나갔다.
태평산 담산사를 순례하고 나오는 길, 할머니의 주름진 손엔 여전히 향이 들려져 있었다. 바닷바람이 소금기를 실고와 할머니의 손등에 한 짐 부려놓고 태평산으로 달아나고 있었는데 하늘은 어찌나 맑고 높던지 뭉게구름 하나가 둥실 떠서 할머니에게 구름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1934년생인 담산사와 할머니는 동무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둘은 그렇게도 닮았는가. 아름다운 담산사의 모습이나 할머니의 고해와 같은 모습이나 똑 같았다. 담산사 부처님의 웃는 얼굴도 할머니의 웃는 얼굴도 나에게는 하나처럼 보였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떠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