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중순, 지방 국립대학교의 학과장 보직 교수인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 학과에서 전공 교과 수업을 해오던 강사가 장기체류목적으로 해외 출국하게 되어 갑자기 사직하는 바람에 남은 1학기 수업을 필자에게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를 그만둔 지 제법 시간이 지났고 출강할 대학이 원거리라 고사했지만, 학기 도중에 대체 강사를 구하기 힘들었던 후배가 다시 부탁해 오는 바람에 고심 끝에 승낙했다.
전공학과 2학년 강의실에 들어서니 너른 강의실에 학생은 10명 정도밖에 없다. 4년 전 이 강의실에서 수업할 때는 강의실이 꽉 찼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 추가모집까지 해서 신입생 정원을 겨우 채웠으나 중도에 수도권으로 떠나는 자퇴생이 급증하는 바람에 1년 사이에 학생 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지방대학의 민낯을 보니 지방대학이 위기라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는 학령인구에도 악영향을 미쳐 해마다 입학 자원이 줄면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충원 미달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는데 학령인구 감소를 바라보면서 예견하였던 위기가 실제로 눈앞에 일어나고 있다. 신입생을 채우지 못하여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지방대학 캠퍼스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출강하면서 만난 교수 대부분은 ′대학에 미래가 있는 것인가′라는 자조적 심경에 빠져있다.
학령 감소 외에 지방대학이 고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도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스카이(SKY), 인서울(In-Seoul)에 이어 지거국(지역 거점 국립대), 지잡대(지역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방대 입학생들은 ′인서울′하기 위해, ′인서울′한 학생은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반수를 선택한다. ′인서울′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학부 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방대학은 수도권대학에 비해 취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나라의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모여 살고 있으며, 100대 기업의 91%가 밀집해 있다. 이처럼, 모든 인프라와 일자리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누가 지방대학에 가려 하겠는가?
지방대학들이 이처럼 생존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대학교육 정책이 ′자율과 경쟁′ 논리에만 의존하여 수도권대학보다 경쟁력이 낮은 지방대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재정지원도 ′선택과 집중′의 경쟁방식을 도입해 지방대학에 불리하게 적용되었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교육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학생 충원과 취업 등이 비교적 쉬운 지리적 환경에 놓인 수도권대학이 우위를 선점하는 편중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역대 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대학의 입학정원 감축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 대학의 구조조정 정책 추진 결과 2003년 대비 2021년 입학정원은 총 18만 명 감소(27.7%)했다. 수도권 대학은 3만5천 명(15.9%) 감소에 그쳤지만, 지방대학은 14만6천 명(33.6%)이나 감소했다. 그런데도 전체 대학 입학정원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33.7%에서 2021년 39.2%로 5.5%p 상승했다. 즉,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더욱 심화되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서울 소재 대학, 수도권대학, 통학 가능 대학, 원거리 대학으로 다시 재편되고, 지방대학은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밀려나게 된 것이다.
현재 지방대학의 문제는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지방대학 퇴출을 단순한 시장 논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방대학은 ′경제와 문화, 복지′ 등 지역 생활 터전의 구심점이다.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지방의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지방 공동화(空洞化)가 발생, 지역 상권의 붕괴는 물론이고 청년 인구의 유출을 불러와 지역 산업 경쟁력 약화와 함께 국가 균형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집난을 겪으면서 지방대학들은 요즘 이름 바꾸기에 한창이다. 개명을 해서라도 모집난을 해소해보겠다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출강 중인 대학도 교명에 지역명을 빼고 '국립'이라는 명칭을 넣어서 교육부에 교명 변경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역′을 숨기려는 대학의 자구책이 한편으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지방대학도 절박한 심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학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국가와 지역자치단체 차원의 대책도 나올 수 없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은 기업이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출할 수 있도록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교육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역자치단체, 기업체 등과 함께 지역을 혁신하고 신산업을 창출하여 주변 지역 일자리 창출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구조 개혁은 정부가 주도하는 일방적 규제도 아니고 시장 중심의 방임도 아닌, '사회적 협의'를 통해 해법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대학 몰락은 이미 시작된 지방 소멸을 필연적으로 앞당길 것이다.
[여계봉]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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