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꿈속에 광상산에서 노닐다

이순영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이 드러나는 그녀는 시대를 잘못 선택해 태어났다. 하필, 그녀는 조선에서 태어났을까. 하필, 그녀는 여자로 태어났을까. 하필, 그녀는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그녀의 구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참고 살면서 한 생을 마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천하의 허난설헌이다. 가만히 묵묵히 조용히 살기엔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닥치고 그냥’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그 시절, 존엄성 따위는 남자들에게나 줘야 했던 여자들의 지옥 조선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시부모 잘 섬겨야 하고 아들 낳아야 하고 바람 피지 말아야 하고 질투하지 않아야 하고 유전병 있으면 안 되고 말 많으면 안 되고 남의 것 훔치면 안 되는 칠거지악, 이 거지 같은 세뇌의 족쇄를 채워 노예로 부려 먹은 조선의 남자들에게 시원하게 가운뎃손가락 날려 주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도 남자의 것, 사상도 남자의 것, 예술도 남자의 것이라는 남아선호의 끝판왕 조선에서 홀로 외롭게 핀 꽃 초희는 ‘시’를 통해 조선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우아한 답변을 내놓았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붓을 들어 한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외쳤다. 스스로를 혁신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도구를 들고 답이 보이지 않는 삶을 역설했다. 끊임없이 죽어가는 자아로부터, 사랑이라는 끔찍한 속임수로부터 자신을 구해냈다. 꿈속에 광상산에서 노닐며 그녀는 죽음을 예감하며 시를 지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네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은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그녀의 문학은 외교관이며, 시인인 오빠 허봉에게 영향을 받았다. 강릉의 명문가이자 대부호인 아버지 허엽의 셋째딸로 태어나 허초희라는 본명이 있지만 허옥혜라고도 불렸다. 호는 난설헌으로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누이다. 그녀는 14살 되던 해에 아버지 동창인 김첨의 아들 김성립과 결혼한다. 권력가 집안인 안동 김씨가로 시집갔지만, 남편은 늘 밖으로 돌았고 시집살이에 시달렸다. ‘아름다운 구슬이 깨어졌으니 그 슬픔이 어찌 끝나리’라는 시구처럼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승의 삶은 모두 잊고 신선들이 사는 곳에 가서 근심 없이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시로 읊으며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녀는 자식을 둘이나 잃었고 그 충격으로 배 속의 자식까지 유산되는 슬픔을 겪는다. 그녀를 애지중지 키운 아버지가 경상감사 벼슬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상주에서 객사한다. 그리고 둘째 오빠 허봉은 율곡에 관한 토론을 하다가 정치적으로 엮여 백두산 밑에 있는 갑산으로 귀양을 간다. 귀양에서 풀려나 금강산을 떠돌다가 객사하고 만다. 그렇게 불운은 끊임없이 그녀의 등에 올라타 채찍질했다. 

 

삶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그 가혹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건 예술밖에 없었다. 인간적 고통을 극복하는 길은 현실에 없다. 그렇게 삶이라는 고통을 시와 그림으로 달래며 살았다. 고통과 고뇌와 불운으로 산 그녀의 일생은 겨우 27년이었다. 스물일곱에 요절한 그녀, 천재는 일찍 죽는다는 말은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는 그녀다. 조선의 3대 박명을 꼽으라면 천재박명, 예술박명, 여자박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일찍 죽은 자식들로 인해 현모도 못되었고 바람둥이 남편을 둔 덕에 양처도 못되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던 그녀에게 시詩는 탈출구였으며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결국 자신의 운명도 시라는 매개체로 마무리하며 요절하고 만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쓴 시와 그림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긴다. 세상에 대한 미련 따위에 얽매이고 싶지 않고 자유로운 우주 나그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 허균은 누이 허난설헌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을 것이다. 제사 지내줄 자식도 없고 죽어서마저 남편 곁에 묻히지 못하고 혼자 덩그러니 잠들은 무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애잔했을까. 조선에 태어난 천재 여류시인의 작품이 그대로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허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유작을 모아 누이의 문집 ‘난설헌고’을 만들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문집이다. 그녀의 문집은 중국 일본 등에서 널리 인정받았다. 현재 전해오는 그녀의 작품은 213수가 남아 있다.

 

그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에 27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 참혹한 난리를 겪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는 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난리마저 겪었다면 얼마나 더 참담한 삶의 강을 건너야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가혹한 삶 가운데에서도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운 그녀는 광상산 유토피아에서 여전히 시를 쓰고 있을까. 부조리하고 불평등 없는 천상에서 신선이 되었을까.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06.22 10:03 수정 2023.06.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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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