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의 인문학적 글쓰기] 귀고리를 단 남자

곽흥렬

선입견이란 참으로 무섭도록 끈질긴 것인가 보다. 아무리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다짐을 해도 잡풀처럼 고개를 들고 일어나 사람의 마음을 고약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바로 이 선입견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강의 시간 맨 뒤쪽 구석진 자리에 앉은 학생치고 게으르고 불량스럽지 아니한 아이 없다거나, 머리에다 울긋불긋 물을 들인 청소년은 무조건 나사가 풀렸다거나, 구멍이 숭숭 뚫린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엉덩이춤에 걸치고 다니는 아가씨는 으레 정조 관념이 헤플 거라는 의식 따위이다. 귀고리에 대해 품고 있는 나름의 가치 판단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성싶다. 

 

예전부터 나는 여성들의 귀고리에 유다른 관심을 가졌었다. 그 관심은, 강산이 두세 번이나 바뀔 만큼 긴 세월이 지났어도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하나도 덜하지 않다. 그만큼 귀고리에 기울인 관심이 거의 병적이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귀고리가 사람 평가를 내리는 데 있어 내 나름의 잣대가 되어 주는 둘도 없는 장신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늘진 장의자 같은 곳에 무연히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네들의 귓불 부분을 유심히 살피는 별스러운 습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 턱이 없겠지만, 나는 나대로의 인금 나름을 내리는 것이 하나의 재미난 취미가 되었다. 남들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아니하고 색다른 취미를 갖는 일, 이거야말로 따분한 세상살이에서 적잖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귀고리를 하는 측에서 살피면 다분히 남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 그럴 경우 어쨌든 애초 목적은 달성이 된 셈이다.

 

여인들의 장신구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귀고리다. 그래서일까, 자기 과시욕이 강한 여성일수록 무엇보다 귀고리에다 과도한 신경을 쓰게 되는가 보다. 요즈음은 여성들 사이에서 귀고리 패용이 보편화되었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쌀에 뉘처럼 그다지 흔치는 않았다. 그때는 귀고리를 한 여성과 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이 대강 1대 9 아니면 2대 8 정도로 후자 쪽이 빈도수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었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와서는 그 비율이 5대 5 정도로 엇비슷해진 성싶다. 아니, 오히려 전자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귀고리 하나로 여자들의 교양 정도나 성격 혹은 직업 따위를 딱 부러지게 구분해 낼 수야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판단에 필요한 하나의 참고자료로는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럴 경우 귀고리를 단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교양 정도가 낮고, 성격은 자기 과시형이며, 사회적 대우가 처지는 계통의 직업에 종사할 것 같고, 귀고리를 하지 아니한 여인의 경우는 그와 반대일 성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르긴 해도 속에 든 것이 적을수록 겉포장에 열을 올려 열등의식의 정신적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사 아니던가.

 

귀고리 패용의 여부만이 아니다. 일단 했다면 그 크기며 모양새도 유용한 판단의 자료가 된다. 예전엔 귓불에 착 달라붙는 아담한 유형이 주종을 이루었었다. 그랬던 것이 요즘엔 치렁치렁 요란스러운 모양이 대세로 여겨진다. 다들 자기표현에 과감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외모지상주의 세태도 화려한 귀고리의 유행에 한몫 거들고 있을 법하다. 내 나름의 평가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라도 한 듯,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 강정들이 그만큼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귀고리를 단, 특히나 굴렁쇠만 하고 화려한 모양의 것으로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비율이 높아 가면 갈수록 세상은 그 수치에 비례해서 점점 천박성의 도가 더해져 간다고 한다면 나만의 독단적인 판단일까. 

 

그래도 젊은 아가씨의 귀고리 한 모습은 싱그럽고 발랄해 보여 또 그런대로 애교 삼아 보아줄 만은 하다. 개중에 제법 나이깨나 먹은 늙수그레한 여인이 유치찬란한 귀고리를 하고 다니는 모습은 아무래도 영 아니다 싶다. 아마도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젊으나 늙으나 매한가지인 모양인데, 아무튼 늙어감에 대한 항거의 몸부림인 것도 같아 보여 한편으론 측은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남자들 가운데도 귀고리를 단 사람이 다문다문 눈에 띄는가 싶더니, 요사인 젊은이들이 많이 꾀어드는 장소에서면 제법 심심찮게 만날 수가 있다. 여인네들의 경우는 또 그렇다 쳐도, 사내아이들이 귀고리를 하고 다니는 모습은 아무리 곱게 보아 넘기려고 해도 여전히 거북살스럽다. 유니섹스 모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성은 여성답고 남성은 남성다움에서 그 순정한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세상사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게 참 묘한 구석이 있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도 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내가 사내아이들의 귀고리 문제에 대해 적이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서면, 생기발랄한 그 또래들은 하나같이 깜찍하고 멋스럽지 않으냐며 반문을 해 오니 하는 말이다. 나는 어쩌다가 19세기식 안식眼識을 지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나이라고, 헛배만 잔뜩 부르게 먹어 버린 나이 탓일까, 아니면 근본 편향된 시각 때문일까.

 

여하튼 사람살이에서 귀고리 같은 자질구레한 겉치장 따위에 과도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성싶다. 그래도 굳이 하고 싶다면, 남들이 진정으로 우러를 마음의 귀고리라도 하나쯤 가슴속에다 간직하고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6.23 10:10 수정 2023.06.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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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