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원시(原始)가 살아 숨 쉬는 횡성 동치악산

여계봉 선임기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제2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세 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허덕이던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치악산 자락으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생기를 찾는다. 버스는 안흥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을 지나서 시원한 주천강 물줄기를 따라 달리다가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몇 차례 돌아 부곡지구로 들어간다. 안흥에서 부곡마을로 가는 이 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포장도 되지 않은, 횡성군에서도 첩첩 오지였다고 한다. 세 시간 반 걸려 행사장인 강림 솔거리 공원에 내리니 어디선가 바람결에 실려 온 숲 향이 갑갑하기만 했던 폐부에 몰려들고, 공원을 감싼 눈부시게 푸르른 신록은 6월 한낮의 따가운 땡볕을 저 멀리 쫓아낸다. 

 

치악산 향로봉과 비로봉을 잇는 산그리메

 

치악산(雉嶽山) 하면 원주의 치악산을 떠올리지만 횡성군 지역인 동치악산 부곡지구도 산의 빼어남이 원주 쪽에 못지않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비경을 꼭꼭 숨기고 있는 횡성군 동치악산의 부곡지구는 울창한 숲과 계곡, 폭포, 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치를 그려낸다. 특히 솔거리 공원에서 곧은재까지 오르는 5km 되는 거리는 치악산 중에서도 가장 경사도가 낮아 가족동반 트레킹 장소로 최고다.

 

강원 횡성군이 주최하고 횡성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는 ′동치악산 트레킹 & 산골음악회’가 6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400명이 넘는 등산객들이 참가한 가운데 강림면 솔거리 공원과 동치악산 일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횡성명산 등반인증 챌린지′ 사업의 일환으로, 횡성의 명산과 걷기 좋은 길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는데, 지난 4월 29일 첫선을 보인 ′횡성호수길 힐링트레킹′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행사다.

 

트레킹 행사 등록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동치악산 트레킹은 주 행사장인 솔거리 공원을 출발해서 부곡탐방지원센터를 거쳐 곧은재까지 왕복 10㎞를 걷는 코스로 진행된다. 솔거리 공원에서 부곡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목에는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하염없이 귓전에 맴돌고, 금계국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계곡과 산에서 올라오고 내려오는 바람이 밀고 밀리듯 이마를 스쳐 지나간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치악산 향로봉과 비로봉을 잇는 산그리메가 펼쳐지는데,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너무 아름답다. 

 

치악산 부곡탐방지원센터

 

부곡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고둔치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6월의 무더위를 가시게 해준다. 녹색의 숲과 식물군으로 덮인 트레킹 로드를 조금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치악산 비로봉 가는 큰무레골 등산 탐방로이고, 왼쪽은 곧은재로 가는 계곡 트레킹 길이다. 우리는 곧은재로 길을 잡고 맑고 아름다운 숲길을 성큼성큼 걷는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계곡의 깊은 원시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잠시 후 폭포가 나오는데 옥수가 쏟아져 내려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적셔 준다. 부곡폭포는 낙폭이 큰 폭포가 아니라 기암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다. 아래로 자그마한 소를 만들었고 넓은 바위도 있다. 사람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일까? 햇살이 폭포 위로 부서져 내릴 때면 숲 사이로 안개가 걸린 듯 신령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고둔치 계곡 사이에 숨어 있는 부곡폭포

 

 

사람들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횡성 쪽의 치악산을 따로 후치악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후치악산의 어느 곳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부곡지구의 수려한 계곡은 단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태종대, 노고소, 부곡폭포 등의 많은 명소들을 안고 있는 부곡지구는 원시의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널따란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은 경사도가 없고 숲이 우거져 싱그러움이 온몸을 감싸온다. 골 넓고 기암이 펼쳐진 계곡엔 우렁차게 물이 흘러내리고 있고 새소리가 물소리에 묻어질 정도다. 

 

원시가 그대로 살아있는 동치악산 숲길

 

치악산은 일반적으로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에 이르는 급경사를 가진 주 능선의 등산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완만한 경사를 가진 동치악산 구간은 비로봉, 향로봉, 곧은재 등 정상과 주요 능선 지점을 가장 완만하게 오를 수 있고, 많은 인파를 피해 고둔치 골과 부곡 폭포 등 태고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유순한 이 길은 예전에는 강림, 부곡 주민들이 원주장을 걸어서 가던 오솔길이었다고 하니 앞서간 선인들이 남긴 향토적 서정이 물씬 풍겨온다.

 

원시림 계곡의 쉼터에서 산림욕을 즐긴다.

 

 

곧은재를 앞두고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나타나면서 숲이 우거져 한낮에도 어두침침할 정도로 그늘을 만들어준다. 계곡이 끝나는 소나무 숲길에서 제법 경사가 있는 산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오늘의 목적지 곧은재에 도착한다. 곧은재는 원주 국향사 쪽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향로봉 쪽으로 가는 코스가 만나는 길목이자 본격적인 치악산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곧은재에 서면 길은 치악산 비로봉(1,288m) 방향과 향로봉(1,043m) 방향으로 나뉘게 된다. 고개를 곧장 넘어가면 원주 쪽 곧은재탐방지원센터로, 오른쪽 능선을 따라 2시간 정도 산을 오르면 치악산 정상 비로봉으로, 왼쪽 능선을 따라 30분 정도 가면 향로봉으로 가게 된다.

 

치악산의 4개 등산로가 만나는 곧은재

 

 

고갯마루 널찍한 숲속에는 진행 요원들로부터 인증 도장을 받은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하고 있다. 주변에 서 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진하다. 오늘만큼은 모두 산행 욕심을 내려놓은 표정들이다. 사실 산이란 정상 정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고 보기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계곡에 자리를 틀고 앉아 물장구를 치고, 발을 담근 채 도시락이나 과일을 먹으며 신선이 되어보면 그만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넓은 바위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책을 읽으면 더 좋다. 

 

올랐다 내려오는 발길이 가볍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걸으니 육신조차 편안하다. 산길에서는 귀에 익숙한 계곡 물소리가 풀잎 위로 굴러서 들려온다. 바람도 얼마나 시원한지 도무지 여름 같지가 않다. 나뭇잎 사이로 그림자와 함께 떨어지는 햇살은 신발 속 발가락까지 간지른다. 부곡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금계국이 무성한 하천을 따라 내려오니 집결지인 솔거리 공원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 소리에 발걸음은 더 가볍고 가뿐해진다. 

 

트레킹 행사 후 열린 ′산골 음악회′

 

′산골 음악회′가 열리는 공연장 객석에는 버스킹 가수들이 부르는 노랫소리, 산들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 근처 계곡의 물소리, 이런저런 소리가 기분 좋게 귓전에 머물다 간다. 치악산 산자락에서 마음이 열리지 않을 이, 행복을 느끼지 않을 이가 있을까.

 

이날 행사를 주관한 횡성군에서는 서울에서 횡성까지 셔틀버스 왕복 운행 지원, 간식 제공, 트레킹 완주자에게는 고급 황태까지 선물하여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9월에 실시 예정인 ′횡성명산 등반인증 챌린지 세션3′ 행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벌써 기다려진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6.28 10:55 수정 2023.06.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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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