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늘 주류에 들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쓰며 산다. 주류가 프로리그라면 비주류는 마이너리그다. 이왕이면 주류에 드는 것이 보통 인간의 욕망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비주류에 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열외 취급할 것이다. 조선에서 주류로 활동하며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책에서 달달 외우며 시험에 대비했지만, 정작 평생 비주류의 마이너리그로 살면서 위대한 학문을 이룬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유난하게 마이너리그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애정이 많다. 그걸 뒤집어 말하면 나도 마이너리그에서 존재감 없이 살았다는 반증이다. 따지고 보면 주류에서 빛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은 주로 금수저로 태어났거나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거나 죽을 만큼 노력해서 사다리를 올라갔거나 하는 사람들이다. 이도 저도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일류를 부러워하며 겨우 턱걸이로 이류에 진입했거나 혹은 그마저도 못해 삼류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퇴계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런데 남명을 잘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 둘은 일 년 차이로 태어나서 일 년 차이로 죽는다. 퇴계가 주류라면 남명은 비주류다. 중요한 건 주류와 비주류가 아니라 바람 앞의 등불이 된 조선을 이끌어가던 주류와 비주류의 학자라는 사실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퇴계는 말발이 잘 먹히는 서울대학교 총장인데 남명은 그저 시골에 처박혀 사는 가난한 선비다. 그런데 이 시골 선비가 임금을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 냈다.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입바른 말을 한 남명을 두고 조정에서는 고약한 놈이라고 당장 잡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과 한낮 시골 선비의 용기가 가상하니 그냥 두자는 사람들의 각축전이었다. 나는 남명의 용기와 기개와 자존심과 시골 선비의 때 묻지 않은 순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남명은 민암부(民巖賦)라는 시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철학을 가감 없이 풀어 놓으며 왕에게 거침없이 조언하고 있다.
유월 여름 장마철에,
거북바위가 말처럼 우뚝하여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다.
아아, 험함이 이보다 더한 데는 없네
배가 물로 인해 나가기도 하고,
또한 물로 인해 엎어지기도 한다.
예부터 백성이 물과 같다고 했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아, 이 시를 읽으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백성을 이토록 정확하게 진단한 사람이 있었을까.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과 같은 개념일 것 같지만 그건 오해다. 공산주의자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사람이 먼저다’는 남명의 ‘민암부’와 전혀 다른 논리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나라를 다스리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변혁하지 않으면 길이 없고 개혁하지 않으면 백성들로부터 외면당해 종래에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고 시를 통해 왕에게 조언하고 있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진정한 애국자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재산만 챙기면 되고 자기의 안위만 걱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관심 밖이다. 다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든 재해가 일어나든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 본성이라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면 큰일 난다. 당장은 해 해가 끼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화가 나에게로 온다. 인과응보의 시간이 과거보다 빨라진 것이다.
백성이 나라의 운명을 만드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배를 저어가는 사람들은 눈으로 물을 보기 때문에 물이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조심하지만, 임금은 백성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없기에 함부로 하고 업신여기기도 한다. 리더는 마음으로 백성을 볼 줄 알아야 하는 덕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남명은 말한다. 업신여김을 당한 백성은 반드시 리더를 향해 반기를 들게 되어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배는 물을 만들 수 없다. 배는 물을 뒤엎을 수도 없다. 백성도 마찬가지다. 백성은 임금을 만들 수도 있고 만든 임금을 쫓아낼 수도 있다. 물은 바람이 자면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그러나 바람이 사나워지면 물은 바닥까지 뒤집힌다. 모든 자연의 이치는 이와 같다. 인간도 자연이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실천한 사람이 남명 조식이다.
비주류로 살면서 학문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의를 중시한 남명이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한 현실정치의 조언자이기도 했다. 주류에서 이름을 떨친 퇴계와 편지로 학문을 주고받으며 사상의 우정을 쌓았는데 지금도 경상도에서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를 큰 줄기로 치고 있다. 한때 명종의 부름을 받고 정치권에서 도를 논했으나 상서원판관이의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7일 만에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체질적으로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남명 자신도 알았기에 시골 선비로 사는 삶이 더 마음 편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남명은 지리산을 매주 사랑한 선비였다. 평생 12번이나 올랐는데 61세에는 아예 멀리 천왕봉이 보이는 덕산으로 이사를 해서 지리산을 예찬하는 시들을 지으며 노년을 보냈다. ‘덕산에 살 곳을 정하고’라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청빈한 시골 선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리오만
그저 천왕봉이 천제 계신 곳과 가까움을 사랑했다네.
빈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까나
은하수처럼 맑은 십리 물 마시고도 남겠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