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후 세상은 신 중심의 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시대, 관념의 시대에서 실념의 시대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신 중심의 관념의 철학에서 깨어나 모든 것을 경험적인 현상학적인 실물에서 찾고자 하는 시대 조류는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쳐 시에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창가에 세레나데를 부르거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당신이 아니면 못 살겠다는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던 낭만주의 물결이나 자연의 대상을 놓고 찬양 일색이던 시풍이 이미지 중심의 그림으로 바뀌는 회화주의 시풍으로 바뀌어 오늘날 현대 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 중심의 시대는 신을 친양할 수밖에 없었고 그 찬양의 대상과 찬양 방법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는 신 중심의 시대가 아니고 실념, 실물의 물질주의 시대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관념을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천 마디 외쳐댄들 사랑하는 대상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겠는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읊조리면 “별꼴이야”라고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감정 토로가 낭만주의 시대의 정서라면 오늘날은 현상학적인 실념, 실물의 시대다. 물질의 시대다.
사랑의 실체를 이미지로 바꾸어야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이다. 꽃다발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치던지 화려한 옷차림과 외제 승용차를 타고 같이 드라이브하실까요? 다이아몬드 명품 가방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선물하면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라고 했을 때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것이다.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여인을 찬양하거나 자신의 심정을 언어의 음악적 리듬감에 실어 노래로 불러왔던 시대에서 철저하게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로 러시아 형식주의 쉬클로프스키의 주장처럼 ‘낯설게 하기’로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끌어와 폭력적인 결합을 시도하여 유사은유로 형상화한 시가 우수한 현대시가 된 시대이다.
많은 시인들이 철저하게 노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직도 현대시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언어의 리듬을 중시하고 이미지가 아니라 장식적 수사에 의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자 하는 구태의연한 틀을 고수하는 시인들이 많다. 현대시의 흐름을 몰라서기도 하겠지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그릴 수가 없을뿐더러 그림 위주의 현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서를 그대로 노출시킨 노래위중의 시를 쓰고 있는 현실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낭만주의와 화화주의가 그대로 공존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최근 낭송시라고 하여 통상적으로 문학 행사 때이면 낭송시를 읊곤 하는데 그 낭송시를 듣고 아직도 현대시의 시대인가 낭만주의 시대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음악에 비중을 더 두느냐 회화성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음악성을 살린 현대시라면 모르겠으나 현대시라고 볼 수 없는 엘리엇의 ‘시는 정서로부터의 도피’라는 말과 상반된 정서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낭만주의 시대를 연출한 시들이 대부분이어서 이게 어찌된 일일까?
복고풍이라면 모르겠으나 복고풍이 아니라 시의 대중화라는 미명 하에 낭송의 분위기로 대중들의 갈채는 받겠으나 시로서 생명력이 없는 일을 왜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복 입고 갓을 쓰는 격인데 갓을 쓰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일회면 족할 텐데 그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단의 풍속도는 멀어져가는 독자들을 더 멀어져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 낭송시로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시인들끼리 낭송시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 모임들이 있고 여러 시집 출판기념회 때 관례적으로 시 몇 편은 낭송하지만 정말 낭송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모더니즘적인 현대시는 낭송하면 전혀 낭송으로 전달이 되지 않고 아주 형편없는 시로 전락해버리고, 낭만주의 풍의 말도 안 되는 시가 오히려 낭송하는 연회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으니 낭송되어야 할 시, 시각적인 매체로 제시해야 할 시 등을 구별하여 낭송의 방법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성이 강한 음악시는 낭송으로 회화성이 뚜렷한 회화시는 화상으로 보여주는 등 낭송시의 다양한 방법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보겠다.
현대는 노래를 잃어버린 시대다 그림의 시대다. 시가 살아남으려면 노래와 그림이 어울려진 음악성과 회화성을 융합한 신명 나는 시로 외면하는 독자들을 끌어모아야 하지 않을까? 시적인 완숙도가 높은 시로 낭송을 해야 하지 그냥 정서를 노출시켜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말초적인 시가 어디 현대시라고 하겠는가? 일회용의 시일 수밖에 없다. 음악성을 살리고 상징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한 한용운 시인의 시에서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 낭송시의 앞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노래를 잃은 시대, 메마른 현대인의 가슴을 적셔주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대중가수 사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처럼 대중과 함께 노래와 말 춤을 추며 흔들어대듯이 대중의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현대시로 낭송시의 활로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