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 칼럼] 여름을 살아가는 법

신연강

 

무더운 여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더위에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운 여름을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눈 깜짝할 새에 한 해의 반을 지나 초복과 중복을 보내고 말복을 코앞에 두고 있다. 마지막 복(伏)을 보내면 한해의 더위는 다 끝난 셈이다. 하지만 극한의 호우 속에 이따금 내리쬐는 햇볕은 아직 따갑기만 하다.

 

불볕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된 영화관에서 세상사를 잊게 하는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산사(山寺)에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맑은 차 한잔 우려 마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처럼 무더위를 날릴 시원한 방법은 꽤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시원하다’라는 것은 ‘덥다’라는 것의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땀 흘린 뒤에 느끼는 청량감과 개운함이 시원한 정도를 높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땀을 줄줄 흘릴 정도의 운동을 하고 나서 들이켜는 차가운 맥주 한잔, 또는 양지에서 그늘로 막 건너와서 입에 넣는 화채 한 사발이 정말로 ‘시원하다’라는 감탄사를 내뱉기에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라거나, “진정한 여름은 땀 흘린 뒤에 온다”라고 말한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 진학 준비할 때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에어컨 없이 푹푹 찌는 사각의 공간에서 책상 위에 책을 수북이 쌓아놓고 땀 흘리며 책을 뒤척였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 친구들은 ‘여름의 전사’라 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지금도 들판에서 목격하게 되는 농부의 모습은 현존하는 투사다, 뙤약볕 아래서 구릿빛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 모습이야말로 ‘한여름의 전사’일 것이며, 요즘 같은 호우 때에 실종자를 찾아 황량한 벌판과 늪을 휘저으며 온 힘을 기울이는 군인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이야말로 ‘진정한 여름의 투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처럼 극도의 폭우 속에 맞는 여름은 여름답기보다는 참혹하고,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계절이다. 몸과 마음을 늘어지게 하는 정도를 넘어, 이번 여름은 불과 몇 초 만에 사람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여름이다. 그래서 이 계절을 보내는 것은 이제껏 우리가 생각하고 겪어오던 ‘여름을 살아가는 법’이 아닌 ‘여름에 살아남는 법’이 된다. 

 

큰 사고로 인해 얼떨결에 각인된 생각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하차도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산비탈 근처에는 얼씬대지도 말 것이며, 범람하는 도로의 맨홀을 요령껏 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호우로 비가 들이치면 돈이며 지갑이며 신분증이고 내팽개치고 몸 하나만을 제대로 건사해야 한다. 만일 한밤중에 산이 운다면 잠에 취했더라도 사력을 다해 줄행랑을 칠 것이며, 제방이 터졌다면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소와 돼지 등의 가축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일이다. 이것이 문명이 발전한 21세기, 세계 10위 권의 국력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기이한 여름에 살아남는 법이 된다.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여름은 들판에서 뇌우를 만났던 그 시간에 고착된다. 가까운 곳에서 구물거리던 먹구름이 뭉게뭉게 몸을 부풀리더니 사나운 비바람을 몰아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소나기는 이내 폭포수처럼 차가운 물줄기로 변했다. 도심에서 학교에 다녔기에 논밭과 옥수숫대 무성한 들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와는 대조적으로, 시골 중학생이었던 고향 친구는 능숙하게 낫질해서 옥수숫대를 쓱쓱 베어내더니, 순식간에 옥수숫대를 엇대고 웃자란 풀들을 얹어서 인디언 텐트를 만들었다. 

 

고대인이 사용했음 직한 움막처럼 근사한 공간을 만들었고, 이후 여자애들과 어린 동생들을 그 안으로 몰아넣었다. 흘러내리는 빗물이 조금씩 안으로 배어들었으나 움막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막 서리해온 수박을 깨어 먹으면서, 비가 세차게 퍼붓는 세상을 깔깔대며 웃어넘겼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더는 경험할 수 없는 내 영혼에 각인된 특별한 한여름의 정경이다.

 

비포장 길 위로 지면의 열기가 현기증 나도록 뿜어 올라오고, 매미들은 목청껏 숲속에서 울어대던 한여름 풍경. 논 한가득 무성한 벼는 광인(狂人)의 머리카락처럼 뻗치고, 진갈색 논둑을 이리저리 건너뛰어 세찬 개울에 이르면 인기척을 느낀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로 재빠르게 숨어들었다. 맑은 개울 물속으로 뛰어들며 으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 흐르던 땀을 한 방에 날려버리곤 했다. 그런 자연 속에서의 ‘원시적 더위 나기’야말로, (시골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며) ‘여름을 살아가는 법’이 되었다. 

 

그리운 것이 풍경이 되어 뇌리에 남는다. 풋풋하고 성긴 정서가 살아남아 그리움이 되고, 이내 고마움이 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영원한 마음속 그리움에 대해서… 손을 빌리고, 펜을 빌려서 살갑기 그지없는 ‘여름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다. ‘여름에 살아남는 법’이 아닌 ‘여름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이메일 :imilton@naver.com

 

작성 2023.07.28 11:19 수정 2023.07.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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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