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잔한 내 가슴에 조약돌은 왜 던져~. 세월 더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 속의 옛사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이런 사유(思惟)의 열매는 필시 유행가 노랫말이나 제목으로 영글어 익는다. 이런 유행가는 가수와 노래 간의 연분과 대중들의 가슴팍을 데워주는 인기 연분(緣分)이 따로 있다. 같은 가락과 노랫말을 서로 다른 가수가 부르는데, 대중들의 반응은 각별하다.
이는 가수의 유명세와도 상관이 없고, 각각의 노래·가수·대중 간 정서와 취향의 함수관계라고 할 수 있다. 박성훈이 작사 작곡하여 장민의 리메이크 목청으로 세상에 다시 나온 <조약돌 사랑>도 이런 노래다. 이 노래를 그의 아들 장현욱이 2021년 트로트전국체전에서 열창하여 대중들의 가슴팍을 휘저었다. 잊혀진 듯 이어온 노래와 대중들 간의 인기 연분 끈을 다시 팽팽하게 당긴 것이다.
잔잔한 내 가슴에 / 조약돌을 던져놓고 / 본체만체 돌아서는 / 무정한 사람아 / 이렇게 나를 두고 / 떠나갈 바엔 / 잔잔한 내 가슴에 / 조약돌은 왜 던져 / 아~ 당신이 던져놓은 / 사랑의 조약돌 // 외로운 내 가슴에 / 조약돌을 던져놓고 / 본체만체 돌아서는 / 얄미운 사람아 / 이렇게 나를 두고 / 떠나갈 바엔 / 외로운 내 가슴에 / 조약돌은 왜 던져 / 아~ 당신이 던져놓은 / 사랑의 조약돌 / 아~ 당신이 던져놓은 / 사랑의 조약돌.
노래 속 화자의 가슴팍은 잔잔한 웅덩이였다. 화자의 상대방은 돌을 던져놓고 가버렸는데, 웅덩이의 파문(波文)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본체만체 돌아선 얄미운 사람~.
<조약돌 사랑>의 원곡 가수 장민의 아들 장현욱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무대의상을 입고 ‘조약돌 사랑을 아시나요.’라는 닉네임으로 열창을 했었다. <조약돌 사랑>은 1995년 이효정이 먼저 불렀고, 2000년 장민이 리메이크를 해서 인기를 더 얻었던 노래다. 잔잔한 내 가슴에 조약돌을 던지고 간 얄미운 연인을 향한 절규.
조약돌을 던지고 돌아선 연인의 뒤태가 얄밉다. 작은 조약돌 혹은 주먹만 한 돌덩어리를 던지고 떠나간 남(도로남)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약돌에 맞은 가슴팍도 따끔거리듯 아리고, 큰 돌덩어리에 맞은 가슴도 시퍼렇게 멍이 들기는 매한가지다. 사랑은 쌍방통행의 진행형 동사라고 하지만, <조약돌 사랑> 노래 속 연인들의 이별 사연이 궁금하다.
<조약돌 사랑>을 읊조리는데, 1989년 오은주가 불렀던 <돌팔매> 노래가 오버랩된다. ‘누구야 누가 또 생각 없이 돌을 던지는가/ 무심코 당신은 던졌다지만/ 내 가슴은 멍이 들었네~.’ 2016년 유지나가 부른 <미운사내> 속의 남정네도 아낙네에게 돌을 던지고 간다. ‘순진한 여자의 가슴에다/ 돌을 던진 사내야/ 떠나버릴 사람이라면/ 사랑한다 말은 왜 했나~.’ 노랫말이 비슷하고, 의미도 상통한다. 돌을 던진 사람은 하나같이 남정네다. 왜 그럴까, 살랑거리는 치맛자락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떠나간 아낙네의 사연은 언제쯤 유행가락으로 재랑거릴까.
<조약돌 사랑>을 리메이크한 장민은 1956년생 본명 장필국이다. 1983년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문차상 수상 후 1990년 데뷔하였으며, 2019년 향년 64세 폐암으로 타계했다. 그가 남긴 가요계의 발자국은 또렷하다. KBS 전국민요대회 연말최우수상, KBS 나훈아모창대회 1등, KBS 전국노래자랑 우수상, KBS 전국노래자랑 일본오사카특집 특별공연 등등. 2000년 <조약돌 사랑>등 13곡을 담은 《장민 2001》음반도 냈었다. 그는 트롯 전국체전에서 아들 장현욱이 한 말처럼 그리 빛나지 않은 가수가 아니라, 이력이 반짝거리는 예인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 가인(歌人)은 가고 뒤를 이은 아들이 그가 남긴 가요(歌謠)를 절창한다.
그는 1995년 장민 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여 음반 <되돌아올 수 없나요>,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를 발표하였고, 1999년 <첫사랑>, <아부지>를 냈지만 무명 생활이 이어졌고, 2000년 고속도로음악(길카페)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이때 발매한 《장민 짬뽕 디스코 1·2》에 <조약돌 사랑>을 실었다. 이 노래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후 예명 장민과 본명 장필국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대중들과 소통했다. 그의 타계 소식은 2021년 트롯 전국체전에 출전한 아들 장현욱을 통하여 팬들에게 뒤늦은 부고장(訃告狀, 2019년 타계)처럼 알려져 아쉬운 파문을 일으켰었다.
트로트히트제조기 박성훈이 작사 작곡을 한 <조약돌 사랑> 원곡 가수 이효정은 1994년 <새벽달>로 데뷔하여 1995년 <사랑의 조약돌>을 발표했다. 이 노래를 신바람 이박사(1954~. 남양주, 본명 이용석)와 정의송(1965~. 삼척)과 진성(1960~. 무안, 본명 진성철) 등이 리메이크를 하였으며, 뒤이어 부른 가수가 장민이다.
박성훈은 1951년 창녕 출생 부산 성장, 1976년부터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1970년대 부산과 서울에서 가수 현철(1949~. 김해 대저 출생, 본명 강상수) 등과 함께 ‘현철과 벌떼들’그룹 멤버로 활동하다가 전업 작곡의 길을 걷는다. 그는 KBS 전국노래자랑(1980.11.9.~현재) 심사위원 딩동댕~ 아저씨다. 2016년부터 창녕군에서 박성훈과 함께하는 《창녕양파가요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23년 행사는 9월9일 창녕공설운동장에서, 창녕군 주최 MBC경남 주관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그의 대표곡은 현철의 <사랑은 나비인가 봐>·<내 마음 별과 같이> 주현미의 <첫정>, 하춘화의 <날 버린 남자>, 전미경의 <장녹수>, 이효정의 <우리 어머니>, 유지나의 <저 하늘의 별을 찾아>, 나훈아의 <고장 난 벽시계>, 박상철의 <항구의 남자> 등이다.
21세기 트로트 열풍시대, 복고 리메이크 노래가 한창이다. 유행가의 유행화(流行化) 시대가 왔음인가.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는 가수는 많은데, 다시 100년을 흘러갈 만한 쌈박한 신유행가(新流行歌)는 들리지 않는다. 뭉그러진 대파 다발처럼 축 처진, 얄궂은 정객(政客)들의 개인적인 분탕일탈(焚蕩逸脫)과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세상살이에 얽힌 사람들의 삶과, 너풀거리는 풍진과 같은 시대의 혼탁을 풍자·해학·서사·서정 하는 유행가를 제조하지도 가창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코스미안 세상을 꿈꾸는 시인 활초가 유행가 작사의 펜을 들었다. 기대하시라~. 드디어 무쇠 가마솥이 슬슬 데워지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바꿔주세요>(MZ가 세상을 향하여), <구구팔팔이삼사>(구구팔팔 청춘만세) 이것이 활초 신유행가의 이름패다.
노래를 근간으로 하는 음반·음원·가창 사업이 이윤 창출을 지향하는 것이 본말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다. 1988년 금지곡 해금(解禁)이 정치권의 눈길로부터 멀어진 것은 분명한데, 인간의 삶을 대중문화예술로 승화·힐링·충전하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예술철학가객을 고대하는 마음이 학의 모가지처럼 길다. 그래서 스스로 ‘노래에 꿈을 얽어서 파는 예술가’라고 하는 나훈아(본명 최홍기)가 더욱 환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유행가의 유행화 시대, 첨단기술과 예민한 감성으로 꾸며진 스테이지 위에 화려한 조명과 무지개 빛살이 굴절되는, 인기 정상의 탑(TOP) 가수들은 옛 노래 깃발만 들고 펄럭거린다. 새 가수가 새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왜 그럴까. 기획·연출되거나 희망곡을 불러드린다는 콜송(call song) 프로젝트에는 흘러온 노래, 묻히거나 잊혔던 노래들이 시청자들의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신청되고 절창 된다. 100년 흘러온 유행가는 저마다 소중한 보물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100년을 흘러갈 신유행가, 오늘을 묵시하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나라 노래에 유행(流行)이라는 말이 처음 붙여진 것은 전통민요 <아리랑>이다. 1894년 5월 31일, 일본 「유후빈호우치신문」에서 이를 <조선의 유행요>라고 소개를 하였단다. 이후 1930년대부터 유행가라는 말이 통용되다가, 1940년대 일본에서는 전시 상황을 고려하여 가요곡으로 불렸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대중가요와 유행가 등으로 통칭되다가, 1960년대에 오늘날 쿵쾅거리거나 훌쩍거리는 트로트가 대중가요의 한 갈래 물길이 되었다.
하늘 여행을 떠나신 아버지 장민과 아버지의 무대의상을 입고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조약돌 사랑>을 노래하는 아들 장현욱의 가수길이 꽃길로 이어지길 기원드린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