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는 서해 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다.
늘 그 섬에 가고 싶었다.
바다에 발을 담근 섬 봉우리에 올라 선유8경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바닷가를 따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한없이 거닐고 싶었다.
오늘에서야 신선이 반한 섬 고군산군도를 찾아 떠난다. 새만금 방조제는 ‘한반도 지도를 새롭게 그렸다’라고 하는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거칠 것 없는 직선도로 차창 밖으로 산업시설들이 바람처럼 스쳐가고 푸른 바다가 나오면서 자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신시도 근처에 오니 오른쪽으로 고군산군도 섬들이 도열해서 우리를 반긴다. 선유도가 포함된 고군산군도는 유인도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63개의 섬 군락으로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이다.
2년 전까지 선유도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했다. 오늘은 버스로 고군산대교를 건너 무녀도를, 이제 완전 개통된 선유대교를 지나 선유도를, 장자대교를 지나 장자도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유도는 고군산도의 중심 섬이다. 경관이 아름다워 예부터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자주 찾았는데, 다리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이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선유도 트레킹 코스는 '고군산길' 또는 '구불8길'이라고 부른다. 장자도 주차장을 출발하여 식당촌과 수산물 시장을 지나고 길이 30m 정도 작은 대장교를 건너니 바닷가에 고깃배와 카페촌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펜션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대장봉을 향해 산오름을 시작한다. 산자락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파란 잎을 반짝인다. 바위를 감싼 해묵은 넝쿨들이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밀림 같은 숲을 빠져 나오니 앙칼진 암봉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암릉 경사면을 따라 한 발 두 발 옮긴다. 단 한 번의 실족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가파르다.
마침내 대장봉 정상이다. 여기에 서면 선유도 및 장자도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고군산군도 최고의 절경 중 하나다.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는 평화롭다. 포구 어귀마다 고깃배 몇 척이 출렁이고, 짙게 낀 해무가 하늘빛을 가리지만 아름다움까지 가릴 수 없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평범한 그림을 명화로 만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선유8경 중 하나인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峰)'이 보인다. 바다 건너 북쪽에 한 줄로 선 섬들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발 아래로 산행 들머리인 대장리가, 장자도의 장자대교 너머로 선유도가 해무로 덮여 있다. 대장봉 하산길의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은 자연이 그려낸 실루엣 풍경화다.
계단을 내려오면 작은 사당 뒤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장자 할매바위다. 웅크린 모습이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장봉을 내려와 선유도로 들어서기 위해 인도교를 지난다. 인도교에서 바라보니 조금 전에 올랐던 대장봉이 해무를 허리에 감고 있다. 주말이라 떼거리로 섬 아래에 몰려든 사람들이 싫었던 것일까.
선유도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초분공원은 섬사람들이 전통적으로 해 왔던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여준다.
새로 생긴 짚라인 탑승장은 스릴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망주봉 쪽 무인도가 하강지점이다. 해수욕장에서 짚라인 하강장으로 긴 연륙교가 연결되어 있다.
선유도 일대는 청정지역이다. 개발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개발을 해야 궁극적으로 섬도 살고 여행객도 유치할 수 있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모래가 아주 곱고 희다. 유리처럼 투명한 바다와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선유8경 중 2경이고, 그 뒤로 보이는 망주봉은 3경이다. 갯바람에 실려 온 해무가 온 몸을 감싸니 우화등선(羽化登仙), 내가 바로 신선이 아니던가.
망주봉은 산 전체가 하나의 암릉이다. 바위가 미끄러워 등반할 때 로프를 잡고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망주봉 아래로 노란 유채 밭이 눈에 띤다. 선유도는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신선이 노닐 만한 섬으로 남아야 한다. 때로는 물 위에 뜬 섬으로, 때로는 섬 안에 든 물로 살아야 한다. 여행자에게 가슴을 들뜨게 하는 섬으로 남아야 한다.
선유3구 선착장은 군산에서 배가 운항할 때는 활기가 넘치던 어항이었다. 선착장 끝에는 작은 기도등대가 있고, 지금은 고군산군도를 운항하는 유람선이 드나든다.
선유봉은 선유터널에서 2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선유봉을 오르며 잠시 뒤돌아보면 섬을 관통하는 대로 너머로 선유대교가 보인다.
선유도 정상 선유봉(112m)에 서면 5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품은 산자락이 파란 물색 바다에 발을 담구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따뜻한 햇볕은 물색을 옥색으로 만든다. 선유봉 아래 남쪽 옥돌마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바닷가에 자그마한 자갈들이 빼곡하게 깔려있어 옥돌해변이라 불린다.
무녀도로 넘어와서 한가로운 어촌 풍경을 보며 바닷가를 걷는다. 이곳은 시간도 잠시 멈춰있는 진정한 '섬'이다. 선유도보다 절경은 덜하지만 상업적인 모습이 덜해 오히려 더 찾고 싶은 섬이다.
아쉬움 때문일까.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흐리면 흐린 대로 선유도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뭍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펼쳐지는 섬들의 군무를 구경하던 신선들의 발걸음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섬이 곧 섬도 육지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그곳에 가면 다시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