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비상사태(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독일 철학자)
어젯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만나 호프집으로 갔다.
“와, 여기 좋다. 이 집으로 가자.”
맥주와 치킨을 주문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 얼마만인가! 가족이 모두 모인 이 안온한 일상이!’ 건배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는데, TV에서 끔찍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분당 서현역 AK플라자 흉기 난동… 13명 부상....’
‘헉!’ ‘오! 일상이 비상이 된 시대구나!’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를 보며 절규했다.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 경제가 급성장하고 정치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정치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인류는 황금빛 꿈을 꿨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 수 천만 명이 몰살을 당했다. 기후위기로 인류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
우리는 이성(理性)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벨탑의 허구를 보았다. 인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현대를 인류사의 긴 관점에서 보면, 일상이 늘 비상사태인 참혹한 전쟁시기일 것이다.
세계대전 같은 큰 전쟁은 없을지라도, 크고 작은 테러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만 끝나면 일상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우리의 일상, 지구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파괴하고 얻어진 물질적 풍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는 넘어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사람이 꿈을 꾸려면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한다. 언제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가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이 되면, 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예술, 인문학 교육이 중심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최소한의 복지가 보장이 되니,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기술학교에 진학을 하게 할 것이다. 대학은 그야말로 큰 배움의 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아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성 위주의 교육을 하니 사람들의 고운 심성이 파괴되었다. 지금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나는 최근에 ㅂ 독립서점에서 청년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다들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이라고 한다.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나요?”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꿈을 꾸는 길은 얼마나 고된 길인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만 보장해주면, 그들은 자연스레 꿈을 꾸며 즐겁게 자신들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조금씩
뒤꿈치를 들어
키를 높여요.
- 박두순, <나무> 부분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키운다. 나무는 항상 키를 높인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은 생각이 있어, 항상 더 나은 자신을 꿈꾼다.
그런데 꿈을 꾸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로 가게 될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