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만 있던 페이스북에 ‘싫어요’ 버튼이 추가됐다고 한다. 나라면 ‘좋아요’와 ‘싫어요’ 말고 ‘다 괜찮아요That’s O.K’ 버튼도 추가하리라.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이쪽과 저쪽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다 괜찮다는 선택은 없었다.
언젠가 미국에서 한국인 의사의 일화를 읽었다. 사전 시간 약속도 없이 아침 일찍 독감 예방주사를 맞겠다고 찾아오신 할아버지가 계속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시기에 다른 의사와 시간 약속이라도 있으시냐고 여쭤봤더니 그렇지는 않지만 할머니와 아침식사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이라고 대답하시더란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할머니는 양로원 너싱 홈에 있는데 지난 5년 동안 매일같이 양로원에 찾아가 아침식사를 꼭 같이 하신다기에 할머니가 좀 기다리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자기는 알고 있지 않느냐고 하시더란다. 이 할아버지를 통해 이런 게 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최근 내 딸들이 1978년 하와이에서 보고 소식이 끊겼던 사촌 형제를 37년 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반갑게 만나 봤다. 하와이에서 부동산 중개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두 살 위의 작은 누이가 1983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남긴 재산을 탕진하면서 내 큰 조카가 바이폴라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본 내 작은 조카는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미고 살더란다.
자신은 아주 어려서 잘 몰랐지만 어머니가 크게 성공하자 아버지가 바람을 많이 피우느라 가정불화가 심해 형이 상처를 입고 조울증까지 앓게 되었다면서 동생을 대신해 형이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다고 형을 극진히 보살피고 있더란다. 흔히 세상은 불공평하다지만 어찌 보면 평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가진 것이 많을 때는 모든 것을 당연시하거나 남용하게 되지만 가진 것이 없을 때는 아무 것이라도 다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던가. 그래서 전화위복이 가능한가 하면 그 반대로 전복위화도 되는가 보다.
최근 유튜브에 ‘카니 정의 경이롭게 감동적인 연설Connie Chung-Awe Inspiring Speech’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올랐다. 탈북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뒤 LA에서 집 없는 노숙자로 전락했다가 역경을 딛고 일어서 하버드 대학 박사가 된 한인여성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좀 해보면 6.25 동란 때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를 하다 미군사령관의 입양제안을 받아드려 일찍 미국에 와 줄리아드에서 음악을 공부했더라면 어떻게 인생이 달라졌을까. 또 1978년 하와이에서 부동산 매매 중개업을 같이 하자는 작은 누이의 제안을 받아드려 하와이에 정착했더라면 인생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내 세 딸들이 음악가가 되는 일은 없었을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음악가가 되는 것보다 내 딸들이 음악가가 된 것이 얼마나 더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더 생각이 떠오른다. 젊은 날 코스모스 같았던 그녀와의 첫 사랑이 이루어졌더라면 평생토록 코스모스를 그리워하면서 키워온 ‘코스미안’ 철학과 사상도 싹트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래도 저래도, 얻어도 잃어도, 다 괜찮다고 해야 하리라. 가는 길이 오는 길 되고, 오는 길이 가는 길 되며, 주는 일이 받는 일되고, 받는 일이 주는 일된다. 저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