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분복대로

곽흥렬

정원수로 한때 향나무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병원, 행정관청 같은 공공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개인회사며 심지어 가정집 앞마당에까지 향나무 심기가 열풍처럼 불었다. 그때는 모두들 정원수라 하면 향나무 아니고선 아니 되는 줄로 알았다. 

 

수요가 많아지면 자연히 값어치도 올라가게 마련인 법. 몸피가 어른 팔뚝 정도만 된다 싶으면 한 그루에 자그마치 이삼십만 원은 너끈히 호가했었다. 이십여 년 전의 금새로 쳐서 웬만한 봉급쟁이의 근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 금액이다. 향나무에 대한 대접이 그렇게나 좋았다.

 

잘 다듬어진 향나무들로 가꾸어진 정원은 우선 그 집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면 몽실몽실한 자태가 마치 거대한 꽃봉오리들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게다가 바람 없는 겨울날 향나무 위에 함박눈이라도 살포시 내려 덮이면 가히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해 내었었다. 그때의 정서로는 그처럼 기품이 있어 보이던 나무였다.

 

세상일이란 것이 다 그러하듯 나무 심기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시나브로 향나무에서 소나무로 바뀌어 간 것이다. 이젠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졌다 싶은 집의 정원에는, 값어치가 상당할 성싶어 보이는 소나무 한두 그루쯤은 으레껏 심기어 있다. 

 

자연 향나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부르는 게 값이던 금도 갯값으로 떨어졌다. 한때의 유행을 좇아 대량으로 향나무를 길렀던 많은 식물원들은 큰 금전적 이득은커녕 도리어 그 처치에 골머리를 썩여야만 했다. 이로 미루어 살피면, 미美에 대한 가치 기준이랄까 태도 같은 것도 한결같지는 않아서 시절 따라, 세월 따라 부침이 심한 것이 세상사인가 보다. 

 

사람들이 한동안 그리도 선호하던 향나무에 싫증을 내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뀜을 추구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예쁘게 가꾸어진 향나무는 사람으로 치자면 성형한 미인이다. 부지런히 깎고 다듬고 고치고 해서 한껏 모양을 낸 작위적인 아름다움, 이런 아름다움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 판에 넣어 박아낸 다식茶食처럼 모두가 그게 그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쉽사리 식상해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네 삶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사람들이란 본래 각인이 각색 아닌가. 저마다 생김생김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고 타고난 재능도 천차만별이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있는 반면에 기계 만지는 데 능한 이도 있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요즈음의 교육은 모든 아이를 형틀에 부어서 찍어내는 블록같이 만들려고 한다. 새장 속에 든 새처럼 길들이려 애쓴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단풍나무는 단풍나무대로, 모과나무는 모과나무대로 그 타고난 속성이 각기 다른데도 도무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참새 떼같이 재깔거리던 그 많은 아이가 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요새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 학교 갔다 오자마자 거실에다 책가방 휭 던져놓기가 무섭게 이 학원 저 학원, 이 교실 저 교습소를 전전하느라 아이들은 사정없이 거리로 내몰린다. 

 

맞춤교육을 욕심내는 잘난 부모들의 등쌀에 천진난만한 동심이 멍들어 가고 있다. 그 묘목 같은 것들이 도무지 기를 펴지 못하고 부모들이 얽어 놓은 욕망의 틀 속에 갇혀 고통받아야 하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고 안쓰럽다. 그런 아이들의 처지가 꼭 성장을 저지당한 채 주인의 취향대로 가꾸어지는 향나무 신세를 닮았다.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처럼 마음껏 뛰어놀도록 자유롭게 풀어주지는 못할까. 허공을 찌를 듯이 쭉쭉 뻗는 미루나무처럼 근심 없이 자라나게 할 수는 없을까.

 

성장이 저지당하면 필시 이런저런 병마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비만이니 소아당뇨니 하는 육신의 병도 물론 그러하려니와, 특히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요즘 아이들의 가슴속에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살 충동 성향이 날로 위험지수를 높여 가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언제였던가, 어머니의 지나친 성화로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한 초등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사건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만든 적이 있다. 부모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채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목숨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만 것이다. 아이는 모름지기 아이답게 길러야 마땅한 법이거늘, 이 하늘의 해 같은 이치를 거스르다 보니 필연적으로 빚어진 비극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모두들 오리의 짧은 다리를 학의 멀쑥한 다리로 만들려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향나무처럼 고만고만한 모양새로 가꾸려고 안달복달하고 있다.

 

세상살이의 이치란 그리 간단치 않은 법이어서, 똑같이 베푼 행위가 어떤 개체에게는 크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어떤 개체에게는 치명적인 해악으로 작용하게 된다. 새에게는 우거진 숲이 그들의 천국이고 물고기에게는 깊은 연못이 그들의 천국 아닌가. 물고기가 물을 사랑함을 가지고 새를 연못으로 옮겨서도 아니 될 것이며, 새가 나무를 사랑함을 가지고 물고기를 숲으로 옮겨서도 아니 될 일이리라.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나름의 분복대로 제 빛깔과 향기를 뿜어낼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놓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꾸밈없이 크는 소나무 같은 인격체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8.11 09:59 수정 2023.08.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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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