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공부모임의 한 회원이 ㄱ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그 작가가 ‘그냥 살자’고 했는데, 참 좋았어요.”
그 말은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가는 어느 정도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기에 ‘그냥 살자’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약자의 정신승리법’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을 신(神)으로 숭배한다. 당연히 돈이 적은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에게서 시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기심을 인정하기가 싫어 ‘그냥 살자’라는 말로 자기 최면을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살아!”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냥 살 수 있을까? ‘그냥 사는 것’은 아주 높은 정신의 경지다. 자기 세계를 확고하게 갖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능한 삶의 양식이다.
정말 그냥 살면 얼마나 좋은가? 노숙자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 역사적으로 대성공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일 것이다. 그는 개가 되는 것이 철학의 목표였다고 한다.
배만 부르면 만족하는 개, 얼마나 고결한 존재인가? 디오게네스는 개가 되어 포도주 통에서 햇볕을 쬐며 살아갔다. 그는 그 행복을 알렉산더 황제가 와서 한 자리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그냥 살 수가 있다.
‘그냥 살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청와대에서 한 자리 준다고 하면 어떨까? 그 자리를 사양할 수 있다면 그는 ‘그냥 사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 ‘그냥 살자’고 자위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누구나 신처럼 위대한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믿고 솔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항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보는 연습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면, 자신의 마음의 힘이 커진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성스레 가꿔가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냥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적나라한 사람 풍경을 보여준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겨울밤 벌레 우는 소리는 가을보다 처절하니
근심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수심에 젖네
- 백거이, <겨울밤에 벌레 소리를 듣다> 부분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두보, 이백과 더불어 당을 대표하는 삼대 시인의 한 명이다. 자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사거산(香士居山) 혹은 취음선생(醉吟先生)이라고 한다.
시인의 이름에서 ‘그냥 살자(居易)’가 보인다. 그렇게 살아가면, ‘최고의 즐거움(樂天)’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언제나 ‘향기가 나는 선비(香士)’이다. 이따금 ‘술에 취한 모습(醉吟)’이 신선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이런 고매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갔을까? 시인은 겨울밤에 벌레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시인의 귀에는 벌레 우는 소리가 사람들, 생명체들의 신음소리, 비명소리로 들린다.
시인은 한평생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수심에 젖어 살아갔기에, 그의 이름들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갔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