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폴페리아에 도착하기 위해 서두르다가 내가 그레이엄 바 씨의 보물찾기 메시지들을 갖고 오는 것을 잊어버린 것에 대해 알고는 속이 상했다.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다시 받았다. 과일장수의 좌판 나무 기둥에 새겨진 것으로 연인들의 낙서와 같이 보였다. 메시지는 이랬다. ‘홀라! 수아, 그레이엄 바 가족의 무한한 사랑과 함께’
어제는 기분전환을 위해 아주 특별한 날이었고 그 시궁창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노력을 알고는 더 이상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지는 않기로 했다. 확실히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더 확고하게 내일 아침이면 산티아고를 떠날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을 만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은 10시 30분에 떠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려면 오늘 걸어온 길에 10km를 더 가야 한다. 내일 아침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9.5km 정도만 남아 있게 했다. 출발시간도 아침 6시로 했는데, 순례여행 중 가장 이른 출발시간이다.
제이드, 죠지와 하르트무트는 모두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여러 이유 때문에 이것이 너무 반가웠다. 첫 번째는 그레이엄 바 씨 가족들에게 이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반대로 이들에게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순례여행을 함께 마치는 것이다.
이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며칠도 역시 이상한 날이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는 그건 어떤 면에서 절망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순례를 마치면서 뭔가 가시적인 것을 성취해야겠다고 원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여행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적어도 5주 정도는 더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아직 거대한 ‘시간제 순례자’들에 대해 농담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점차 내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대단히 흥미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 한 토막을 듣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두 명의 젊은 미국인 청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나는 경탄했다. 그들은 특별히 불, 땅, 물의 구성요소와 성질에 대해 솔직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들 중 한 명과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들은 약 4개월간 교양학부 교환교육을 위해 미국에서 알리칸테로 온 대학생 그룹 중의 일부임을 알았다. 그들은 부활절 휴가를 이용하여 각기 자기 나라의 다른 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순례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들의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는 알리칸테에서 온 재미있고 잘 생긴 분이었다. 영어가 유창하여 스페인 사람이란 표시가 잘 나지 않았고 학생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는 교양학부 교수이며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의 등에 기타가 있는 것을 보고 금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캠프파이어 주변에서 노래하며 아늑한 순례의 밤을 보내리라고 상상했다.
그는 이 순례길을 여러 번 와본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무엇이 하이라이트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산티아고에서 25.5km 떨어진 살세다에 있는 카사 베르데라는 장소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거기가 결론적으로 순례의 영혼이라고 했다. 나는 거기서 멈춰 점심을 먹기로 결심했다.
해가 나고 따뜻한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아주 덥지는 않았다. 길가에 피는 야생화들과 정열적인 농장의 동물들, 그리고 야생 동식물들에게 저절로 눈이 갔다. 그들의 자유롭고 한가한 목가적인 풍경에 저절로 미소가 입가에 머물며 행복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또 걷고 걸었다.
그렇게 극찬하는 카사 베르데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곳은 만원이었다. 바깥에 겨우 테이블 하나를 찾았는데 건물 귀퉁이의 쓰레기통 옆에 있는 것이었다. 바깥에 있는 이 장소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안쪽에는 모든 특징이 다 있었다.
천장에 가득 매달린 것은 순례자들이 걸어놓은 온갖 종류의 모습과 색깔, 그리고 낙서로 얼룩진 티셔츠였다. 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온통 바라보아야 하는 분위기였다.
존경심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교수님과, 시카고에서 온 어떤 아버지, 문어를 사준 외로운 독일 여인, 그리고 즐거워하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실 것 주문이 사방에서 들어왔고 맥주를 찾는 사람에 이어 지방 술을 찾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대단했다. 마치 졸업식 날 교내 학생들 주점 분위기와 같았다.
음식 주문은 대혼란이었고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이것이 나를 사람들과 잡담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음식이 나왔을 때 우리는 다시 바깥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리고는 피신한 순례자들이 있는 다소 평화로운 곳에 앉았다.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내가 죽을 듯이 비명을 지르다가 멈출 때까지 우리 일행은 멀리 가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약간 앞서 있었기에 그들이 바로 달려왔다. 도대체 믿기지 않았지만 나는 ‘그레이엄 바 씨의 보물찾기’의 다음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니, 정말 기분은 붕 뜨고 있었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것은 내게 정말 특별한 것이다. 거기에 우리 이름이 있었다. 나와 고든의 이름이 하트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 이 감정을 꼭 껴안고 싶다. 나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를 압도하는 빛 속에서 술을 마셨다. 이 순간 우리 재회의 감회가 엄청난 열정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결국 나는 운명이 이걸 놓치지 않게 해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맨 뒤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앞서 지나갔다. 만약 내가 그들과 이야기하며 갔었다면 나는 이것을 놓쳤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마지막에 이곳을 서서히 걸어가는데, 난데없는 하얀 나비떼가 나를 둘러싸서 그 속에 내가 빠지고 말았었다. 아마 나비떼는 나와 고든의 이 운명적 사랑을 지켜준 수호신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