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정신과 육신이 병들면 부패의 시작이라고 한다. 정신이 병들면 격리시켜 병원에서 치료를 하지만 정신이 부패하게 되면 병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정신이 부패하기 시작하여 썩은 감자처럼 하나가 썩으면 같이 바구니에 담긴 감자가 모두 썩듯이 정신의 병보다 더 심각한 사회부패로 이어진다.
정신의 부패는 격리가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같이 부패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상야릇한 냄새가 난 것도 같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신도 부패하게 되면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드라큘라가 되어버린다. 드라큘라처럼 남의 피를 빨기 위해 높은 지위의 백작으로 위장하여 대저택, 외제 승용차 등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흡혈의 기회를 엿본다. 어느 집단이고 지도자의 정신이 부패하게 되면, 그 집단은 부패가 집단의 최대가치가 되게 되며, 부패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그 집단에서 내몰리게 된다.
부패하지 않으려면 방부제를 넣어야 하는데, 그 방부제가 빛과 소금이고, 극약인 화학약품인 경우가 많다. 빛과 소금을 전해주는 곳이 바로 종교 지도자들이다. 종교 지도자들의 말씀과 행동은 빛과 소금이 되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패는 욕망과 물질의 소유욕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데, 교육과 사회제도, 윤리와 도덕, 종교에 의해 억제되고 방부제의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로 알려졌지만 본래는 윤리철학자였다. 경제학 저서 『국부론』에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논했지만, 그보다 이전에 그는 윤리철학자로 인간의 이타심과 타인에 대한 동감(同感)의 중요성을 말하는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쓴 학자였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인간이 타인에게 갖는 동감(同感)과 동류의식의 중요성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타적 동물이라고 전제하고, 인간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본능적인 욕구인 이기심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이기심의 추구는 결국 도덕의 타락과 인간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정신의 부패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면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성향에 의해 야기되는 도덕 감정의 타락에 대해 이러한 감탄과 경멸이나 모시 성향은 계급 차별과 사회질서의 확립 및 유지에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모든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고, 존경을 획득하고, 사람들의 존경과 감탄을 즐기려는 것은 야심과 경쟁심의 위대한 목적인데, 부러움의 대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정신이 부패하게 된다. 최고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법률을 무시하게 되고, 자신들의 야심이 달성되기만 한다면, 거기까지 이르는 데 사용된수단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게 된다는 두려움 같은 것은 가지지 않는다. 양심에 철판을 깔아 흡혈귀가 되어버리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기만한다. 인간은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이 고생을 겪으면서 추구하였던 경제적 부나 사회적 지위가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연이 자신의 심리에 강제하는 원리에 따라 허망한 가치를 좇는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의 기만에 따라 부나 명예를 좇는 것이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볼 때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기만 때문에 인간은 근면하게 일하며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개척한다. 그러나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만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 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남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이러한 본능에 의한 부의 추구를 신이 인간에게 행하는 도덕적 속임수로 본 것이다. 부에 대한 욕망 추구를 도덕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이론이지만 결코 부의 추구가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추구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덕적으로 용납된 가치이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도덕적일 때 정신은 부패하게 되고 그 부패는 주위 사람들의 정신까지 부패하게 만들어버린다. 정신이 부패하면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육신이 병들면 병원을 찾게 되고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부패하게 되고 얼마의 기간이 되면 분해되어 냄새가 나지 않고 뼈만 남게 된다. 육신의 부패는 죽음 뒤에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며, 매장문화는 곧 육신의 부패를 돕는다. 부패되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패조차 인정하기 싫어 시신을 화장하여 한 줌의 재로 뿌려진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생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부패되어 생물학적 생명 활동을 지속하더라도 그 냄새는 이웃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사회에서 방부제를 자처한 사람들이 바로 글을 쓰는 작가와 시인들이다. 작가와 시인들은 자신의 혼을 담은 글로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썩지 않게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패한 정신에서 쓴 글은 방부제의 역할이 아니라 사회를 더 부패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창작행위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썩지 않고 노력하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혼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글 한 줄 시 한 편을 쓰면서 혼을 담았는가. 나의 이름만을 알리기 위해 어지러운 글을 쓰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지 않는지 점검해볼 때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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