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개인의 재능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개성’이다. 시인의 개성을 투영한 시 속에서 또 다른 개성이 살아 꿈틀대기 마련이다. 이 개성은 문학의 필수적 특성이다. 이를 ‘인격 표현’이라고도 한다.
이 개성의 문학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생겨난 창조적 작품으로 제한하는 것”(김욱동,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2002, 46쪽.)이라는 말과 연관성이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개성을 창조해내는 힘이다. 이 개성을 달리 말하면 ‘독창성’이다. 그렇다면 시란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을 품은 글의 예술’이 맞다.
솔로몬 왕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창조주의 위대함을 찬양한 말이다. 달리 읽어 보면, 천지 만물은 창조주의 피조물이라는 뜻이다. 창작도 피조물의 모방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이 말은 표절 의혹이 일어날 때면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말과 함께 자기 합리화를 위해 약방의 감초처럼 무대 위에 꼭 등장한다. 둘 다 그 역할은 늘 뻘쭘하다.
문학 작품에서 ‘창조’라는 말이 과연 가능할까? 모든 문학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미메시스’이다. 자연의 모방과 재현이 그 출발점이다. 다시 말하면 ‘모방’ 그 자체가 ‘창조’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재현’ 혹은 ‘재창조’는 존재하지만, ‘새로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문학 작품에서 표절이라는 놈이 박쥐처럼 모호한 경계선에서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그 경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두산백과》에 “표
절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으로 도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본따서 나름대로 재창조한 모방과는 구별된다.”라고 모방과 표절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도용’ 여부가 그 경계선을 갈라놓는다.
시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당연히 모방 혹은 차용이 있을 수 있다. 그 경계를 늘 고민해 봐야 한다. 등단 시인이 습작기에서나 있을 법한 모방 시를 지속해서 발표한다면 시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이 없는 시인은 허울에 불과하다. 시인이 아니라는 말과 다름없다.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에 대해 스스로 전제하고 논증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이라는 놈이 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가령 시의 제목에 널리 알려진 관용구나 대중가요의 제목을 그대로 모방하였다면 문제가 없을까? 차용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독창적이지 못함이 문제이다. 또한, 기성 작가가 발표한 독창적인 시와 수필의 제목, 나아가 단행본의 제목을 차용해도 모방한 시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우연의 일치라 하더라도 독창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치명적인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다.
독자들은 낡은 시어의 모방과 답습보다는 새로움과 신선함에 도전하는 시적 고투의 산물을 읽고 싶어 한다. 완성도가 미흡하더라도 시적 치열성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이다.
시인이여, 모방과 독창성의 경계쯤은 분별하자, 모방한 시는 창작이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과 독창성이 뚜렷하지 않은 시를 함량 미달의 시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이쯤은 알고 쓰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