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참살이’를 실현한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사상가이며 자연주의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간소하게 또 간소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바이블 같은 말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산다는 건 광대한 의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이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라는 것을 깨우칠 때 사랑의 힘이 솟아난다. 나와 자연이 사랑으로 가득 찬 포옹할 때 비로소 합일이 이루어진다. 그 사랑을 위해 참살이를 시작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수에 지은 오두막에 살며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 인간 삶의 궁극일까.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행복은 만족감이 주는 즐거움이다. 만족은 욕망하는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것인데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욕망의 노예가 아니던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어 나오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지 부처님은 일찍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최대의 적이라고 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욕망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필생의 목표가 남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사는 것이다. 남들이 20평짜리 아파트에 살 때 나는 30평 아파트에 살아야 안심되고 친한 친구가 30평 아파트를 사면 나는 40평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죽도록 일한다. 이 욕망을 실현하다가 우리는 결국 인생의 종착에 이르고 만다. 불만족과 욕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만족하라는 것은 욕망을 줄이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줄일 수 있을 욕망이라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깊은 산골 월든 호숫가에서 세 평 남짓한 오두막을 짓고 세상 편하게 산다는 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에게 져서 산골로 가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받을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아는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근원은 끝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이었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사랑이 한없이 큰 헨리 소로는 노예제도를 비판했고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결과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 와서 진정한 고요와 고독과 그 고독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쳤다. 그의 시 ‘자연에게서 배운 것’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여기 전에 알지 못하던
어떤 분명하고 성스러운 약이 있어
오직 감각뿐이던 내게 분별력이 생겨
신이 그러하듯 사려 깊고 신중해진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에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세월을 살던 내가 순간을 살고
배운 말만 알던 내가 이제는 진리를 안다.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본다.
태양이 그 빛을 잃을 만큼
그는 오직 감각뿐이던 마음에 분별력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여전히 감각이 주는 욕망에 얽매여 허덕이고 있는데 그는 분별력을 획득하고 진리를 알며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본다고 한다. 욕망으로부터 지배당한 행복을 과감하게 버린 결과 그는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이다. 행복의 정의를 바르게 깨닫고 난 그는 기쁨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대로 산다는 건 그냥 막 사는 게 아니다. 고도의 정신 수행을 통한 자기 절제와 그 절제를 통한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그의 정신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행복을 위해 또는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대단한 돈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 부는 바람을 보고 폭풍을 알 수 있고 새들의 날갯짓을 보며 하루 날씨를 알 수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들과 달리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시간을 아끼고 존재에서 관계로 정신을 넓혀나갔다. 간단하고 명료한 삶은 그에게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주고 삶의 질을 높여 주어 그 에너지로 시를 쓰고 수필을 쓰며 ‘자연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회의 악습에 항거하고 국가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는 저항정신으로 시민 불복종 운동을 했다.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하며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간디에게 사상적 영향을 주었고 미국 흑인해방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우리나라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수가 세평 남짓한 오두막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며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를 몸소 증명해 주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라는걸 보여주고 있다.
지금
당신은
소유의 지옥에 사는가.
무소유의 천국에 사는가.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