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명하려는 시는 죽은 시다. 시의 내용, 주석, 시작 메모를 통해 시를 설명하려고 하는 행위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조금 강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족을 달았다면 발표하지 말라’며 강조해 본다.
산문시의 경우, 이미지 표현과 형상화 그 자체가 설명처럼 읽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문시의 형태상 혹은 작법 상의 특성이기도 하다. 만일 설명조의 시행이 많다면 운문적 진술, 나아가 묘사 기법으로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
죽은 시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죽은 시를 읽고 싶거든 ‘시의 주검’을 묻어 놓은 ‘시의 무덤’에서나 파헤쳐 찾아 읽어 볼 일이다.
시에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시인이 시를 설명하려 들면 스스로 작품성을 포기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이미 발표한 시의 결점을 해명하려 들면 스스로 함량 미달 시인임을 까발리는 짓이 되고 만다.
시는 있는 그대로 두어야 깊은 맛이 난다. 오독의 상상력도 시의 힘이다. 백 사람이 읽으면 백 가지의 해석이 나와야 시다운 시이다. 시라는 놈이 생물과 같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흔히 시라는 놈은 유기체와 같은 것이라서 살아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는 태어날 때부터 강한 생명력을 품고 태어난다. 때로는 순수성과 참여성, 때로는 서정성과 현실성, 때로는 과거 회귀성과 미래 지향성 등을 품고 태어난다.
시의 생명력이 독자의 가슴에 들어가서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깊은 곳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머릿속에 숨어들어 오랜 휴면을 취하다가 세월이 지난 뒤 깨어나 뒤통수를 한 방 때리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숨이 멎은 시라면 유기체가 될 수 없다. 그건 그냥 죽은 시다. 시의 무덤 속에서나 읽어 볼 수 있는 시이다. 달리 말하면, ‘미완의 시’는 시작 노트나 파일에서 잠자야 한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