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대한 문화유산 한글을 사랑하자

 

말과 글은 국가나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고유한 말과 글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많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는 말과 글이 따로 놀았다. 선비나 고관대작들은 우리말을 하면서도 시를 짓거나 편지를 쓸 때면 한자를 썼다.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자기의 뜻을 문자로 표기할 수 없었다. 이를 가련하게 여긴 세종대왕이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한글을 만들어 보급했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최만리 같은 사람들이 한글을 문살글이니 통시글이니 하면서 비하했다. 문살만 보면 자음과 모음이 다 들어있고 화장실인 통싯간에 앉아 일을 보는 사이에 다 배울 수 있는 글이라고 조롱했다. 그래서 한글은 사회적 약자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보전되었다.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서얼 출신의 스승에게 영향을 받아 한글 소설을 썼다. 그리고 주로 여성들이 한글로 편지를 쓰거나 시조를 지었다. 김만중 같은 귀양살이하는 선비들이 구운몽 등 한글 소설을 썼다. 기생 황진이와 홍낭 등도 한글을 사용하여 빼어난 문학작품을 남겼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으로 한글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한글은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 한글학자 주시경, 최현배 등에 의해 문법이 정비되고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국한문 혼용체를 즐겨 사용했으나 이들은 일찍이 한글 전용을 주장했다. 아름다운 시와 단편소설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나왔다.

 

이제 한글은 세계에서 주목받는 글이 되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조합하여 만든 글이 디지털 컴퓨터 시대에 가장 적합한 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종대왕 당시 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들이 디지털시대를 내다보는 지혜로운 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 선비들이 진문이라고 우기던 한자는 이제 컴퓨터나 휴대폰 위에서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어버렸다. 간자체를 개발했으나 그것도 역부족이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컴퓨터 친화적인 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격에 맞게 우리말과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전 세계에 즐비하다. 한국 문화로 대표되는 케이컬처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유산은 한글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떠한가. 집 안에 있는 보물을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나 골프장 이름은 한글로 짓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영어도 모자라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까지 동원하여 짓는 이름들은 대체 무슨 뜻인지 알기도 어렵고 국적불명이 되었다. 한글로 이름을 지으면 촌스러워 보인다고 한다.

 

차 이름도 마찬가지다. 한때 '누비라' '맵시나' 등의 아름다운 한글 차 이름이 있었지만 이내 촌스럽다고 자취를 감추었다. 아파트 이름도 마찬가지다. 무슨 스테이트나 캐슬 등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분양이 된다고 한다. 정말 한심한 언어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자기 비하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잘 다듬고 보전해야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외국인을 만나면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사람이 온갖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것은 수치로 생각해야 한다.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한글을 무시하는 경향이 더 크다. 이번 한글날을 계기로 우리의 뛰어난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모든 국민이 함께 사랑하는 한글이 되길 바란다.
 

작성 2023.10.09 11:08 수정 2023.10.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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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