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부인이 죽고 혼자가 되어 큰아들 집에 얹혀사는 점잖은 노인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노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지금도 대한민국의 어느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 직한 노인의 소외, 작가는 우리 모두가 작품을 읽으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노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며 '너희는 늙지 않을 줄 아냐'고 호통을 치는듯하다.
김 노인이 지방 소읍에서 살던 시절에는 남의 자식 잘못에 대해서도 서로 책임을 지며 내 자식과 같이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곤 했었다. 어른들은 마을공동체에서 항상 책임감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마을에 누군가 대학에 입학하면 모두가 자신들의 일인 듯 함께 기뻐하며 현수막을 내걸었다. 반면 마을에 흉악범이 신문에 오르내리면 함께 풀이 죽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들 내외는 어른을 공경할 줄도 알았지만 모든 것이 생소한 김 노인은 ‘나는 누구일까’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며느리는 함께 식사한 지 오래되었고 파출부의 도움으로 식사를 해결해 나간다. 요새 사모님들 다 그렇다며 신경 끄고 살라고, 그래야 오래 효도 받는다고 말하며 김 노인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파출부가 고맙게 느껴진다. 파출부의 외아들이 노조 일에 앞장서다가 구사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 노인은 파출부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연민의 마음으로 돈을 얹어주기도 하지만 파출부가 노인의 시중을 드는 값이 따로 지불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자 자신이 웃돈 얹어서 버려진 신세가 된 것처럼 비참해지는 느낌을 갖지만 파출부를 측은해하는 마음이 그의 하루하루를 살맛 나게 했다.
며느리의 친정 동생이 놀러 오자 김 노인은 떠밀리다시피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월드 어드벤쳐에서 놀이시설을 타고 관람도 하게 된다. 아이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벤치에 앉아있는데 어디선지 팡파르가 울리고 광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김 노인은 실로폰을 메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다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맞춘 아가씨는 장난스럽게 윙크하고 따라오라는 신호처럼 대담한 눈짓에 김 노인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뒤를 따른다. 머플러가 떨어진 것을 본 아가씨가 머플러를 감아주고 볼에다가 가볍게 입을 맞춘다. 김노인은 짜릿하고 감미롭고 그리고 포근함을 느낀다.
어느 날 김 노인은 며느리가 아들과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며느리가 김 노인을 새장가 들여야겠다며 아들과 의논을 하는 것이다. 파출부 아줌마와 놀이공원 쇼걸에게 집적댔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지만 능력은 있는지 모르겠다며 주책이라며 킬킬대는 것이다. 김 노인은 심한 치욕을 느낀다. 아들 내외로부터 칠십 노구의 성적 능력을 저울질 당해야하는 것이 억울하다. 아내가 죽기 한참 전 성적 능력은 상실되었다. 그러나 꽃이 피면 즐겁고, 잎이 지면 서러운 걸 느낄 능력이 정정하니 그 밖에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소리가 또 있을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남아 있는 한 그의 목숨은 그에게 보물단지였다.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늙는다는 것은 알면서도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인구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당연히 노인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복지 제도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닌 거추장스러운 사회가 된다면 죽은 사회이다. 아들, 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사회. 자신의 자식은 이뻐하면서 부모는 방치하고 살아가다가 자신도 방치된 부모가 되는 악순환, 자신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노인을 폄훼하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우린 근본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작품 속 김 노인이 원한 것은 물질도 아닐 것이고, 성 문제의 해결도 아니다. 그저 따뜻한 자식들의 말 한마디. 손주들의 아버지를 키우고 가르친 집안의 당당한 어른, 하나의 살아있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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