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 소감
세상엔 가슴 따뜻한 일도 많고 웃을 일도 많지만, 막상 세상 속에 들어가서 살다 보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통해, 글을 통해 한 발 떨어져서 세상을 넓게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고 다양한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알렉산더, 한 인간의 야망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나
삶의 답을 찾기 위해서 종종 책을 뒤적여 본다. 남들이 극찬하는 작품이 때로는 나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기도 하고, 아무도 동요하지 않은 작품에 나 혼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한다. 책의 좋고 나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얼마나 나에게 와닿았냐 하는 것이다. 알렉산더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알렉산더의 이야기에 빠져서 그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것은 당시의 내 상황과 감정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무엇이 영감을 주었냐고 한다면 나는 말한다. 남자로 태어나, 죽기 전에 한 번쯤 가져보아야 마땅할 야망. 그 야망의 끝을 알렉산더는 보여주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겠다고 포고했을 때, 아마도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을 것이다. 젊었던 그에게는 세계통일의 꿈이 있었다. 이것은 패물이 부족하고 백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실험해 보기 위한 내면의 힘이 발동했던 것이다.
인류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칭기즈칸도 위대했지만 알렉산더와 칭기즈칸의 마음가짐은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칭기즈칸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약해지면 죽는다는 처절함과 복수심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게 달렸지만, 알렉산더는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왕국에 왕족으로 태어나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상황을 뒤로 하고 전쟁터로 뛰어 들어갔다. 자신처럼 더 큰 꿈을 가지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런 아버지를 능가해 보겠다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살면서 억울하거나 분개할 만한 일도 없었고 원동력의 무기로 삼을만한 절박함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고 한 번도 살면서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 또래의 세대가 대부분 그러했다. 어릴 적 대통령이나 위대한 과학자가 된다던 친구들은 꿈 대신 현실에 안착했다. 우리는 야망 대신 무사안일한 것을 우선시하는 중년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대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알렉산더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나. 어떤 마음으로 다음 한 발을 내디뎠던 것일까.
그때 마침 나는 사업가로 살며 나의 끝은 어디인가. 내가 정한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장사를 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돈에 대한 목표는 사라진다. 없을 때나 탐났지 돈을 벌어보니 금세 사는 것이 고만고만해졌다. 원체 욕심이 없는 인간인지라 특별히 돈을 많이 모아 사고 싶은 것도 없었고 20만 원짜리 축구화 한 켤레만 사면 퍽 만족했다. 나에게도 처음엔 월 얼마의 수입만 있으면 좋겠다는, 누구나 꿈꿀만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그 꿈이 쉽게 이루어져 버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하는 대신 무에타이 체육관을 운영하며, 격투기용품을 판매했다.
전공으로 했던 일이고 대학을 다니면서 알음알음 시작했던 일이라 별로 어려운 점이 없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정직하게 돈은 벌렸다. 물론 그 ‘열심히’라는 짧은 단어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춥고 궂은날을 상관하지 않고 새벽마다 나를 다독여 체육관을 홍보하는 전단지를 돌렸고, 주말마다 내가 판매하는 용품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전국의 체육관을 돌며 영업했다. 수년간 같은 일을 반복하자 홍보가 되어 차츰 고객이 모였다. 돈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열심히 하면, 벌렸다.
그러자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언제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뛰기만 할 건가? 이대로 먹고사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살면 되는 걸까? 마침 슬럼프도 함께 찾아와 장사가 잘되어도 기쁘지 않지만 안 되면 괜히 짜증만 나는 날이 이어졌다. 젊었을 한때 나는, 무에타이 선수로서 나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 스스로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담금질했다.
그렇게 뜨겁게 살던 내가 은퇴를 하고 밥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꿈이나 포부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안주하며 살게 되었다. 더 이상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자 침체기가 온 것이다.
그때 만난 알렉산더는 나를 몹시도 고무시켰다. 기왕 시작한 사업, 한 번 끝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위대한 영웅들의 일화를 보고 본인도 세계통일을 꿈꾸었다는 알렉산더는, 다른 기업가들의 행보를 참고해 보라며 부추겼다. 혼자 벌어먹고 만족하는 자영업에 그치지 말고, 직원을 고용하고 품목을 늘리고 내가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더군다나 방구석에 앉아서도 전 세계를 상대로 공짜로 홍보할 채널도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하나 만들어서 판매할 생각 없겠느냐고. 수 세기 전에 죽었던 사람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어이, 그냥 한 번 해봐.” 그러게, 나도 언제까지나 한국에서만 살며 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건가. Just Do It 놀랍게도 알렉산더는 나에게, 왜 어떤 놈은 나이키를 만드는데 너는 그것밖에 못하냐고 채근하고 있었다. 그렇지.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저렇게 꿈꿔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때부터 나는 오랫동안 풀어져 있던 나 자신을 다잡고 다시 초창기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뛰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하나씩 새로운 것을 연구했고, 겸손하게 사업을 확장해 갔다. 나를 도와줄 내 편을 하나씩 모아 본격적으로 직원들을 늘려나갔다.
내가 서른세 살이 되던 해, 알렉산더는 또 한 번 나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33세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그는, 짧은 생애에 그렇게 많은 것들을 이루고 간 것이다. 나는 서른셋이 되도록 이제껏 무엇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백 세 시대를 넘어 백오십 세 시대가 온다고 하는 시대에, 어쩌면 우리 세대는 팔십이 될 때까지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 것이다. 그런데 내 나이 겨우 서른셋이니, 서른세 해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고 간 영웅보다 시간적 여유가 더 많이 있는 셈이었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새롭게 리셋하더라도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자신의 한계를 실험해 보다 죽는 게 아닐까, 그것은 잠재된 본능 아닐까. 그래야 젊은 심장을 가지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부하들을 이끌고 전투를 나갈 때면 죽음을 불사하고 대열 가장 앞자리에 서곤 했다는 대영웅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오늘도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