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귀거래사

이순영

그렇다, 나도 돌아가고 싶다.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똑같은 일상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가 하면서 평생 일해봐야 겨우 조그만 집 한 채 건질지 말지 모르는 인생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나도 돌아가고 싶다. 서울 촌놈이라 돌아갈 고향도 없으니 귀거래사를 노래한 도연명이 부러울 뿐이다. 몸뚱이는 도시에 매여 있고 영혼은 자연에서 뛰노는데 언제쯤 몸도 영혼을 따라갈 수 있을까. 기쓰지 않고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날이 올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건 고난이 있다는 것, 고난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인데 그 살아있다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일하고 돈 벌다가 인생 종칠지 모르겠다. 버거운 인생 돌아가고 싶다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돌아가리라

논밭이 묵어가는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이제껏 마음을 몸의 노예로 부렸으니

실망하고 한탄하면 홀로 슬퍼할 것인가

 

지난날은 뉘우쳐 봐야 바뀔 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칠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지질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알겠노라.

 

돌아가리라

사귐도 어울림도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 게 무엇이랴

 

이웃과 나누는 정담이 기쁘고

비파를 타고 글을 읽으며 근심을 삭히리

농부들 나에게 봄이 옴을 알리면

어서 나아가 서쪽 밭을 일구어야지

 

천 육백여 년 전 도연명도 그리고 현재의 나도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악하지 않지만 선하지도 않은 인생을 그냥 살아간다. 마치 강물처럼 물이 흘러가는 데로 그냥 흘러가는 것 같다. 천원마트 다이소에서 쓰지도 않을 싸구려 생활용품을 사면서 잠시 소비의 즐거움을 느끼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곧 박탈감이 밀려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있음을 감사지만 티비 채널을 돌리면 금세 잊고 만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사람은 이렇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욕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렇다. 평범함이 지겹고 우울하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의 인생 루틴을 바꿀 용기도 없다.

 

“돌아가리라. 논밭이 묵어가는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이제껏 마음을 몸의 노예로 부렸으니 실망하고 한탄하며 홀로 슬퍼할 것인가”라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가만히 읊고 있으면 뭔지 모를 안도가 되고 위로가 된다. 천육백여 년 전 사람도 삶은 버겁고 인생은 덧없어 자괴감에 빠졌었나 보다. 누릴 문명도 없고 즐길 문화도 별반 없었을 옛사람도 삶은 다 고난의 연속이고 해 뜬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았나 보다. 이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지금의 나에게 돌아갈 고향은 없지만 돌아가자고 다독이며 위로하는 ‘귀거래사’를 남겨준 도연명에게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토피아에서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다. 도연명은 어느 고을의 현령으로 공무원이 되었지만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시기에 ‘귀거래사’를 썼다. 시골에 와서 은거하면서 농사를 짓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꿋꿋하게 살았다. 마음속 무릉도원을 노래한 ‘도화원기’를 쓰면서 글밭도 일구고 마음밭고 일구며 책과 더불어 검소하고 단순하게 살았다. 이 얼마나 명쾌한 삶인가. 결핍에 감사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그러하기에 도연명이 대단한 사람이다. 

 

브랜드 아파트에 벽만 한 티비가 있고 빨래는 드럼세탁기가 다 해준다. 저 혼자 청소해주는 로봇청소기를 돌리며 인덕션은 깔끔한 주방을 빛내고 쿠팡에서 배달된 밥과 반찬으로 식사하며 거기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외식을 즐기고 또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친목을 다지기 바쁘다. 고급 승용차는 당연하고 휴가는 해외로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이다. 문명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걸까, 그 문명을 소비하는 우리가 문명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행복이라는 관념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행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불행하다. 도연명은 그걸 깨달았다. 우리는 평생 걸려도 못 깨닫는 걸 도연명은 마흔한 살에 깨달은 것이다.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인데 그래도 부럽다.

 

도연명의 시는 부드럽고 소박하고 순수하다. 삶과 시가 일치한다. 술 좋아하고 분노할 줄 알고 그 분노를 시로 승화시키는 시인이다. “지난날은 뉘우쳐 봐야 바뀔 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칠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지질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알겠노라.”라고 어제까지는 글렀고 오늘부터 옳을 것이라는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지난날은 후회해도 소용없고 앞으로는 후회 없이 살 것이라는 고백에 나 자신을 돌아본다. 후회도 반성도 없고 미련만 남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그는 천육백여 년 후의 나에게 말한다.

 

돌아가라

사귐도 어울림도 모두 끊어라. 

세상과 너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 게 무엇이랴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0.19 10:41 수정 2023.10.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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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