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주인이 되어야 진리가 드러난다

고석근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원제:노르웨이의 숲)』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상실의 슬픔에 질식당하고 만다. 왜 그럴까? 왜 그들에게는 ‘진리’가 상실의 슬픔을 치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까? 그렇다면 그 많은 진리가 다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그들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진리를 탐구해 왔을 텐데.

 

중국의 임제 선사는 말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네가 서 있는 곳마다 진리가 드러난다.”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인의 삶을 살아야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인물들, 와타나베, 기즈키, 나오코, 레이코는 한결같이 상실의 슬픔의 강물에 휩쓸려 간다.

 

그들은 신이 죽은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오랫동안 신이 주었던 삶의 지도가 없다. ‘나는 누구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들은 자신과 길을 잃었다. 그들에게 진리는 없다.

 

그들이 배웠던 진리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주인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허무주의의 강물에 휩쓸려 가고 있다. 그러다 간신히 살아남거나 익사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 안의 아이를 깨워야 한다. 아이는 항상 ‘현재’에 산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는다.

 

미래의 불안도 안중에 없다. 그들은 마냥 즐겁다. 힘들면 쓰러져 잔다. 그들은 한숨 자고 나면 다시 해맑은 얼굴이 된다. 그들에게는 매 순간이 천지창조의 순간이다. 그들이 하늘을 말하면 하늘이 새로이 열리고 땅을 말하면 땅이 새로이 생겨난다.

 

그들의 손에 잡힌 나무 부스러기들, 돌멩이 하나도 신비스런 물건이 된다. 그들은 뚝딱뚝딱 한 세상을 창조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그들이 창조한 세상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다. 신이 죽은 시대, 우리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낙타가 되어 자신의 짐을 잔뜩 지고 살아가는 노예의 삶에서는 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낙타가 되면서 잃어버린 것들, 아이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아이는 무엇 하나 부족이 없다.  

 

 

 한 개의 해로는

 밝힐 수 없어

 어둠이 잠든 곳마다

 찾아가며 솟는 해를

 바안짝!

 

 - 선용, <아이들 눈빛> 부분 

 

 

아무리 깊은 어둠도 아이들의 눈빛이 닿으면 환해진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훤히 알 수 있게 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10.19 11:29 수정 2023.10.19 12:0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광주루프탑카페 숲안에 문화복합공간 #로컬비즈니스탐험대 #우산동카페 #광주..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