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유행가 한 곡조 한 곡조가 품고 있는, 유행가역사스토리텔링이 절실한 시대가 왔다. 유행가는 탄생 당시의 상황이나 노래 속에 얽힌 역사적인 모멘텀을 머금은, 시대 상황을 따라 탄생하여 오랜 세월 흘러오는(가는) 보물이다. 여기서 행(行)을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것은 필자의 변이며, 이 흐름을 토색·왜색·양색·신토색·세색이란 말로 조탁하여 100년 세월의 경향으로 얽을 수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코스미안뉴스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에서 스토리텔링 하는 유행가는, 우리 전통 소설 『춘향전』을 모멘텀으로 만든 김용만의 데뷔곡 <남원의 애수>이다. 이는 1954년 김부해 작사 김화영 작곡으로 세상에 나온, 아리랑레코드 독집 음반 A면에 실린 고사가요(古史歌謠)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소냐/ 성황당 고개마루 나귀마저 울고 넘네/ 춘향아 울지마라 달래였건만/ 대장부 가슴 속을 울리는 님이여/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그대 품에 안기려나...
노랫말에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이 도령과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성춘향의 사연이 펼쳐져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화(御賜花)를 치렁거리며 금의환향할 이 도령의 기약이 노랫말에 결연하다. 하지만 언제이련가,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그대 품에 안기려나. 기약이 까마득하다.
이 노래 배경지 광한루는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누각으로, 조선 태조 때 방촌 황희(1363~1452)정승이 세웠고, 본래 이름은 광통루였으나, 정인지(1396~1478)가 광한루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후 재건되었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각지붕 양식이다. 이곳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첫사랑 인연을 맺은 곳으로 춘향사당이 있다. 2절을 펼친다.
알성급제 과거 보는 한양이라 주막집에/ 희미한 등잔불이 도포자락 적시었네/ 급제한 이 도령은 즐거웠건만/ 옥중의 춘향이를 그리는 임이여/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함께 즐겨 웃어보나...
한양으로 간 이 도령은 드디어 과거에 급제했다. 하지만 소식이 감감한, 기다림의 세월 속 춘향은, 새로 부임한 남원골 변 사또의 요수청(要守廳) 거절로 인한 핍박을 옥살이로 견디어낸다. 이런 춘향의 절의를 도령님은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함께 즐겨 웃어보나~. 이런 곡절을 거쳐서 춘향이는 <남원의 애수> 노래 주인공이 되었다.
『춘향전』은 작자·연대 미상 소설로 국한문 70여 종이 전해온다. 줄거리는, 남원지방의 기생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장래를 언약한다. 두 사람이 남모르는 사랑을 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이때 새로 부임한 변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獄)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서울로 올라가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노래 중간에 소설을 대사로 엮은 멘트가 이별 서정의 리얼리티다.
(여)도련님 저만 두고 가시나이까/ (남)춘향아 우지마라/ 내가 가면 아주 가냐/ 간다고 잊을소냐/ (여)광한루에 봄이 오고 오작교에 꽃이 피면/ 님 그리운 회포를 어이 풀란 말이요/ (남)장부의 과거 길에 눈물이 왠 말이냐/ 알성급제 하고 나면 너를 먼저 찾아오마...
<남원의 애수>로 데뷔할 당시 21세, 김용만은 193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6.25 전쟁이 휴전된 후, 1954년 이 노래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곡이 처음에는 관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결국은 그의 가수 인생 전환점이 되었고, 만능 연예인으로 불린 김용만은 <청산유수>, <효녀심청>, <명동 부르스>, <달뜨는 고갯길>, <잘 있거라 부산항> 등을 열창했다.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신유행가는 2014년 억스(AUX)가 부른 <남원 가는 길)로 이어진다. 조선 팝(Chosun pop) 깃발의 펄럭거림이다. 국악에 발라드·힙합·팝·트로트·클래식 가락이 혼융되고, 꽹과리와 해금에 기타와 드럼이 더해졌으니 융합창조이다. ‘이 깊은 산을 넘어서/ 저 넓은 강을 지나면/ 내 사랑하는 춘향을/ 만날 수 있으리...’
2017년 문연주가 <도련님>을 열창하며, 또 『춘향전』을 불러낸다. ‘도련님 도련님/ 한양 가신 우리 도련님/ 불러도 대답 없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무심한 우리 도련님...’ 이 노래 주인공은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몽룡이 춘향의 집에 당도할 때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 향단이다. <남원의 애수>, <남원 가는 길>, <도련님> 노래 속의 이 도령은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나라 과거시험은 고려 광종 때(958년) 도입되어 1894년 갑오개혁까지 936년간 존속된다. 이 긴 세월 동안 시험 답안지는 서술(논술)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1회 치루는 식년시, 나라 경사 때 치루는 부정기 증광시, 특별행사가 있을 때 치루는 별시, 왕이 성균관 문묘(공자 사당 제례)를 참배한 후에 시행한 알성시, 경사가 있을 때 치루는 경과, 시골 유학생들의 학업 권장을 위하여 치루는 지방고시 백일장 등이 있었다.
그 시절 식년시 문과 과거급제는 오늘날 행정고시와 비슷하고, 3년에 1회 치른 문과를 33명 정원으로 선발하였고, 무과는 28명이 정원이었다. 33명을 정원으로 한 것은 불교의 33 도의천이 유래이고, 28은 별자리를 적용한 숫자란다. 이때 잡과는 역과 19인, 의과 1인, 율과 9인, 음양과 9인 등 모두 38인이 합격정원이었다.
이 문과 과거시험에 9회나 장원을 한 어른이 이이(이율곡, 九度壯元公)이고, 1576년 무과에 12등으로 합격한 어른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조선시대 보신각종도 아침을 여는 파루(罷漏)는 새벽 4시경에 33회, 저녁을 마감하는 폐석(閉夕)은 오후 6시경에 28회를 울렸다.
흘러간 대중가요에 역사의 옷을 입히면 개인사가 민족사가 되고, 민족사가 인류사가 되며, 인류사는 인류학으로 승화된다. 21세기 미스·미스터트롯 경연 바람을 타고 온, 리메이크 절창들은 1곡 7재(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의 사연을 아물고 있다.
이 노래들에 차운된 역사 속 단면이나 사람과 사연을 시대 상황과 얽어 펼치는 것이 유행가와 역사 앙상블, 유행가스토리텔링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유행가의 유행화를 통하여 대중들의 삶을 풍성하게 할, 가사담 문화창달(歌史談 文化暢達)이다.
우리 노래 토색(土色)은 민요·창·판소리 등에서 파생한 창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단초로 한다. 이에 소낙비 빗방울처럼 젖어 든 왜색(倭色)은 식민국치(植民國恥)의 세월 동안 소나기 흙탕물이 무명옷을 범벅 시킨, 덧칠 같은 경향이다. 양색(洋色)은 해방정국기와 6.25 전쟁기 월남 파병기 등을 통틀어 미8군기로 혼융한 트렌드로 치면 좋으리라. 이를 융복합한 신토색(新土色)의 정형기는 1960년대로, 21세기 BTS를 정점으로 하는 K-팝을 세색(世色, 글로벌 트렌드)로 의미를 부여한다.
스산한 갈바람 절기와 흰 눈 오시는 날을 지나, 새 꽃이 화사한 봄날이 오시면, 남원 광한루로 춘향 님을 찾아서 나서리라. 바람처럼.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이메일 : 519444@hanmail.net